숭공학교 학생과 성 베네딕도회 신부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에 수록돼 있다.서상돈 아우구스티노, 국채보상운동 주도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은 대한제국의 국운이 다할 무렵, 많은 이가 애국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으로 국가의 독립을 지키려고 뜻을 모았다. 1907년 대구의 신자인 서상돈(徐相燉, 아우구스티노, 1850~1913)이 중심이 되어 일본에 대한 국채를 갚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3년간 전국 사회 각계각층의 호응을 얻어 국민 애국 운동으로 확산했으나, 일본인의 방해 공작으로 1910년 봄에 해산되고 종결됐다.흔히들 ‘천주교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쉽게 비판한다. 심지어는 천주교인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문맹정책(文盲政策)을 펼쳤다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