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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김용은수녀의 살다보면] (55)공격적 말투, 마음 속 안전기지가 무너지다.

참 빛 사랑 2019. 3. 9. 20:26




▲ 마음 속의 안전기지가 무너지면 공격적인 말을 하게 되고, 이는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CNS 자료사진




“그게 무엇이죠?” “왜 따지는 겁니까?” “아니, 몰라서 묻는 건데요.” “모르면 공손하게 물어봐야죠.” “아, 불손하게 느꼈다면 죄송해요.” “죄송하면 답니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고, 심장을 비집고 들어와 가시처럼 콕콕 박혔다. K가 서류를 보완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하다가 도저히 대화가 안 통한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나는 ‘친절하게 살살 달래면 되지’ 하는 마음에 자신 있게 전화를 넘겨받았다가 된통 얻어맞았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 그냥 전화 너머 들려오는 ‘말’일 뿐인데 이렇게 독할 수 있을까 싶었다. 너무도 괘씸해서 ‘어떻게 되갚아주지’ 하는 못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의 말속에 상스러운 욕은 없었다. 나를 직접 비난하지도 않았다. 다만 말은 거센 폭풍처럼 내 마음을 거세게 훑고 지나간 기분이다.

때론 ‘말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역시 신념과 확신으로 상대방을 공격적으로 몰아세울 때가 있으니까. 물론 안다. 내 생각만이 최고의 진리인 양 자신 있게 주장하지만 결국 내가 얼마나 열등한 존재인지를 보여줄 뿐이라는 것을. 품위 있는 말로 소통하는 것 같지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말속에 묻혀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도. 게다가 신경질과 짜증까지 묻어난 말투는 내가 얼마나 불안에 떨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이 톡톡 쏘는 공격적 어투로 상대방의 심장에 꽂혀 상처를 준다. 공격적인 말투, 그 자체로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고받는 대화다. “남편의 말투, 뭐든지 공격형이에요. 그 말투가 너무 싫어 대화도 하기 싫고 온갖 정이 다 떨어져요.” “제 남편도 그래요. 시아버지처럼 꼬치꼬치 따지고. 정말 똑같아요.” “저희 시어머님 말투도 남편과 똑같더라고요. 시어머니와 아들이 싸우면서 1818 주고받을 정도니까요.” “호패법이라도 만들어 천박하게 상대방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천민이라는 도장을 이마에 찍어주고 싶어요.”

말투도 대물림일까? 영국 정신의학자인 존 볼비는 “엄마와 소통할 수 없으면 자신과도 소통할 수 없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의 편안한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어릴 적 편안한 기분을 누리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 조절이 어렵다. 내면의 불안감은 뇌 속에서 안전과 위험을 구분하지 못하게 하니까. 생존에 위험을 느끼게 되고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경보가 울려 즉각적으로 도망가거나 공격한다. 흔한 공격의 무기가 ‘말’이다. 위험을 느끼면 자동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분노하고 폭발한다.

공격적인 말투로 힘들게 했던 공무원에 대해 K가 말했다. “그 사람, 요즘 아파서 병원에 다니면서 약병을 끼고 산다더라고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단지 마음의 안전기지가 허술해서 불안할 뿐이다. 불안감이 분노와 짜증을 불러오고 신체의 생화학적 불균형으로 건강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를 탓하랴. 나의 ‘말’이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때 우선 내 마음속 안전기지부터 살펴야겠지.



성찰하기

1. 가까운 사람에게 평소 나의 말투가 어떠한지 물어봐요.

2. 혹시 말투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거부당한 경험이 있었는지 생각해요.

3. 먼저 가까운 가족에게 친밀감과 신뢰감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요.

4. 습관으로 다진 말투의 변화, 마음이 움직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봉사활동이나 영적 경험을 통해 마음을 열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