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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54)누군가를 향한 분노, 어디서 오는 것일까?.

참 빛 사랑 2019. 3. 5. 21:12




▲ 사진=CNS


“물론 저 잘살면 좋죠. 하지만 누구 덕에 성공했는데요.”

E는 친구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애써 삼키려 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는 한때 어려운 처지에 있던 그 친구를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장까지 알선해주었는데 거기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반대 처지가 되었다. E씨는 사업 실패로 재산을 거의 날린 상태다. 하지만 그 옛날 가난했던 친구는 값비싼 아파트와 외제 차가 있다.

문제는 성공한 친구가 어려움에 처한 E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이라고나 할까. 드디어 어느 날 그는 켜켜이 쌓인 마음속 분노를 친구에게 터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둘의 관계는 더 소원해지고 말았다.

E가 아직도 친구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 가끔 들려온다. 그러면서 어떤 이는 E의 친구가 너무한 게 아니냐고 말한다. “그렇게 잘살면서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친구를 나 몰라라 하다니.” “사람이 은혜를 받았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그런데 또 누구는 E가 안되긴 했지만, 그의 친구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도와달라고 청해 본 적도 없이 원망하고 몰아붙이면 되겠나.” “도움을 줄 때 받을 것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도움이란 주면 받는 거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E의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 원인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채거나 모르면 찾아내려 애쓴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면 그 통증을 고스란히 겪는다. ‘힘들다’고 한탄하면서.

나도 누군가를 무척이나 원망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감정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분노는 마음 어딘가에서 단단한 혹으로 굳혀져 우울하고 지칠 때면 언제든지 상처로 되살아난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내기도 한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 감정이 생길 때 의문을 가져야 했다. 아니 의심을 품었어야 했다. 분노는 내 소중한 마음과 몸을 망가트리니까. 자칫 마음의 만성 통증으로 작은 일에도 불평하고 화를 내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니까.

아직도 분노하며 아파하는 E의 마음 통증, 어디서 온 것일까?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빈곤 탓일까? 친구에게 배려받지 못한 배신감일까?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 그래서 나의 고통에는 너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누군가의 성공이 나로부터 무엇인가를 빼앗아 갔다고 느끼는 그런 감정일까?

“부러우면 진다”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 부와 지식을 부러워한다면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질투에 볼모로 잡혀 있기에 그럴 것이다. 냉정하지만 ‘어쩌면 내가 질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렇기에 부러운 대상의 가치를 과도하게 폄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사실 질투는 본능이다. 그러니 그 자체를 수치스러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도 말아야겠다. 단지 나의 감정에 의문을 가질 뿐이다. 감정을 의심할 때 성찰의 뇌인 전두엽이 움직이고 지능이 올라간다 하니 한 번쯤 분노 감정을 의심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가끔 씩씩거리며 화가 올라올 때 이런 의문을 갖는 연습을 해본다. “내가 누구보다 존중받아야 한다는 지나친 자의식에 대한 몸부림인 거야?” “나를 지키려는 싸움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싶은 거니?” “내 기분대로 내 마음에 들 때만 수용하려는 거지?”

불안이 가라앉고 마음속 공간이 환하게 열리는 듯하다.



 성찰하기


1. 요즘 분노 감정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요.

2. 이 마음의 통증이 어디서 왔는지, 나의 감정에 의문을 가져요.

3. ‘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아닌지, 나의 의도대로 가야 한다는 ‘신념’ 때문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요.

4. 답은 없을지도 몰라요. 단지 화를 진정시키며 다스리는 마음의 여백을 넓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