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마치 넓은 벌판 위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걱정이 많고 분주할수록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CNS 자료사진
고등학교 때 찾아온 사춘기, 난 그때 많이도 외로웠던 것 같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어느 때보다 친구가 많았고 추억도 많았던 때였다. 멋진 새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살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로웠다. 가족들이 시끄럽게 웃고 떠들 때,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가까워질 때, 좋아했던 선생님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 때, 답답하고 강압적인 규칙에 묶여 있다고 느낄 때, 사소한 것 같지만 사춘기 소녀인 나는 마치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서글프고 외로운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서 나 홀로 지구 끝 벼랑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을 받곤 했었다.
그때는 시험을 앞두고도 두꺼운 철학책을 끼고 배회하면서 염세주의에 흠뻑 빠져 지내는 일이 최소한의 나의 저항이며 도피였다. 어쩌면 나를 드러내고 싶은 일종의 위장술이며 허세였던 것도 같다. 하지만 허세로 읽었던 독서의 도움으로 오히려 그 외로움을 즐겼다. 그러니까 공부라는 경쟁의 대열 속에 빠져나와 나만의 세상을 즐길 수 있는 독서의 여유가 외로움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채게 해준 것 같다. 외로웠지만 외로움도 즐길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도 외로움은 불쑥불쑥 찾아온다. 어쩌다 옛 친구들을 만나면 수녀인 나는 그들만의 이야기에 낄 수 없을 때가 있다. 자기들끼리만의 친교를 과시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내 마음속 공간에 섬을 만들어 그들을 바라본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자리에서 나만의 외로움을 관조한다. 그렇다고 유사한 삶의 양식을 지닌 수녀들끼리 어울릴 때 외롭지 않을까? 그렇지도 않다. 함께 살지만 거대한 조직에서의 친교는 피상적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수는 있겠다. 과잉 활동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알아챌 여유가 없다. 외로움은 여백에서만 숨을 쉬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어떨까? 대통령은? 연예인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그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걱정이나 분주한 일에 시달릴수록 마음이 시끄러워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그러면 감정의 신호를 읽어내기 어렵다. 게다가 외로움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움직임이어서 찾아와도 알아보지 못한다.
나 역시 분주할 때 외롭지 않다. 아니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러다가 잠시 멈춰 늦은 밤 나 홀로 성당에서 기도하거나 잠자리에 들 때, 문뜩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혼자라는 현실, 그리고 이렇게 나 홀로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진실 앞에 마주한다. 특히 부모님을 저세상으로 보낸 후,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는 너무도 시리고 아프다. 마치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벌판 위에 나 혼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외로움. 수녀인 나에게는 더 친숙해져야 할 평생의 동반자다. 그러니 이 외로움을 내치지 말자. 시린 손을 비벼대고 발을 동동거리며 바라보는 망망한 겨울 바다 앞에서도 나만의 섬을 만들어 그곳에서 쉬는 연습을 해야겠다. 몸에는 찬기가 스며들고 죽을 것 같아도 마음속 어딘가에 뜨거운 온기가 살아 있으니까. 소속하고 싶은 욕구를 넘어선 품어주고 안아주고 싶은 수용의 욕구가 더 크니까. 인간적인 사랑보다 더 크고도 신비한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니까.
나만의 섬, 외로움. 그 안에 잠시 머물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외로움이 행복인지도 몰라.’
성찰하기
1. 걱정이 많고 분주할수록 내면의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외로운 감정을 돌보지 못해요.
2. 시간이 없다고요? 그러면 마음의 바다를 찾아가요. 그 옆에 아주 작은 섬 하나 만들어 쉬어요.
3. 소외감에서 오는 외로움, 껴안아줘요. 인간적인 사랑보다 더 크고 신비한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니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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