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S 자료사진
사순시기만 되면 수녀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 사라진다. 무언가 절제를 해야 하는데 우리 수녀들이 먹는 것 중에 돈으로 환원해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이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 형식이 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마음이 산란해서인지 가끔 예수님이 아주 낯선 이방인처럼 다가왔다. 며칠 전에는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저항이 불덩이처럼 올라온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주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 아득한 과거의 사건을 때만 되면 기억하며 살라는 거죠?” 하며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썼다.
그때 “기억이 없으면 본능적인 것 외에는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는 어느 뇌과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기억을 잃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침기도 때면 옆자리에 앉은 노수녀에게 그날의 요일을 알려준다. “수녀님, 오늘은 화요일이에요”라고 하면 “응. 일요일이 아니고?” “아뇨. 화.요.일” 하고 다시 찬찬히 알려준다. “알았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시편 하나 끝나면 성무일도(시간 전례) 페이지는 엉뚱한 곳에 가 있다. 치매 노인에게 현재의 시간은 과거가 되는 동시에 소멸하고 만다. 결국, 기억할 수 없는 과거는 사라지고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관심도 의미도 찾을 수 없다.
기억하지 못해 의미를 찾지 못하지만, 의미가 없어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의미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 방금 설비를 점검하기 위해 방문한 공무원 이름, 거리에서 본 수많은 간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예수님에 대한 그 어떤 기억도 불러오지 못한다면 내가 행하는 거룩한 의식은 습관이며 형식이 될 수 있다. 기억은 어떤 경험과 감정을 수반한다. 그래서 기억을 불러올 때마다 더 선명해지고 나의 현실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십여 년이 되어도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뜨거운 이 감정, 바로 기억 때문이다. 단순히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 아닌 어머니와 함께한 그 모든 시간에 대한 의미 때문에 기억한다.
애써 눈을 감고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을 기억하려 했다. 내가 걸어오면서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와 성장기를 지나 수녀원 입회까지를 회상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떠오르는 기억으로 인해 벅찬 감동이 올라왔다.
“아. 그렇구나. 그분이 나와 함께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구나!” 특히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 나는 예기치 않게 닥친 집안의 어려움으로 인해 한동안 고통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소성당 한 모퉁이에 앉아 기도하는 중에 나를 뜨겁게 안아주시는 예수님의 현존과 자비롭고 온화한 시선을 온몸으로 느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롭고도 행복한 체험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부르심에 주저 없이 응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수님을 잊고 산다는 것은 곧 나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이었다. 종교철학자 마틴 부버는 “기억한다는 것은 곧 산다는 것(to remember is to live)”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니까 기억이 없으면 나의 존재 의미도 없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때로 나 스스로 적극적으로 불러야 했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성찰하기
1. 영화나 이야기 속의 거대한 예수님이 아닌 나의 일상을 통해 들어오신 예수님을 기억해요. 아주 작은 바람 한 줄기나 이웃의 친절한 미소를 통해 평화를 가져다주신 예수님을요.
2. 돌이나 바위를 만지고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면서 주변의 소리, 냄새, 느낌을 충분히 누려요. 추상적인 개념을 뛰어넘는 현실이 영적으로 깨어나게 해주니까요.
3. 지금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요. 바로 거기에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계신 예수님을 만나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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