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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160여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선교사의 편지

참 빛 사랑 2025. 3. 24. 17:01
 
안동교구 정도영 신부가 깔래 신부의 후손으로부터 기증받은 친필 서한들. 신학생 시절인 1856년부터 선종 전해인 1883년까지 고향인 프랑스 크리옹에 보낸 편지다.

안동교구가 1860년대 박해 속 조선 땅에서 사목한 프랑스 선교사 깔래(Calais, ‘칼레’라고도 부름) 신부의 친필 서한 68통을 입수했다. 이로써 교구는 지난해 방한한 후손이 기증했던 2통을 더해 깔래 신부가 고향 크리옹(Crion)에 보낸 편지 70통을 모두 소장하게 됐다.

이번에 입수한 서한은 정도영(안동교구 마원성지 담당) 신부가 2월 8일 프랑스 현지에서 깔래 신부 형(도미니크)의 외증손 안드레 투브낭씨로부터 기증받았다. 유럽과 달리 공동체가 활성화된, ‘살아있는’ 한국 교회에 더 필요할 것으로 여기고 양도한 것이다. 1856년 낭시교구 대신학생 시절부터 선종 직전 해인 1883년까지 작성한 편지로, 당대 박해상과 선교사와 우리 선조들의 신앙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특별히 조선에서 선교하던 1863년 10월 26일 부모에게 쓴 편지에는 깔래 신부의 한글 표기가 등장한다. ‘무당’과 ‘하날의 계신 우리드의 아비신(하늘에 계신 우리들의 아비신)’이다. 후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주님의 기도 도입부다. 깔래 신부는 편지에서 “작년에 세례를 준 남자가 무당인 62살 어머니도 개종시키고 싶어 했다. 그 어머니는 여러 차례 악마의 괴롭힘을 이겨내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 됐고, 지금은 또 다른 무당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 신부는 “신학생 때부터 선종 때까지 한 선교사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며 “한국 선교 사제들의 영성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편지를 모두 우리말로 번역해 서한집을 펴낼 계획”이라며 “서한은 도록으로 발간하고, 교구 역사관과 마원성지에 설립할 기념관 등에서도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깔래 신부는 병인박해 속에서 안동교구 제2 주보인 박상근(마티아) 복자와 국적·신분을 초월해 깊은 우정을 나눈 인물이다. 정 신부는 “두 사람의 우정과 양국 우호를 기리는 차원에서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도 서한을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1856~1883년 고향에 쓴 편지
당시 박해상·신앙 엿볼 수 있어


깔래 신부 서한은 조선 순교자에 관해 상세히 기록한 데다 1860년대 한글 표기가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찬미 여수(예수)’와 함께 ‘미리내’·‘강화’와 ‘황해도’ 등 지명도 발견됐다.
 
빨간 선 안에 '미리내'를 한글로 쓴 글씨가 보인다.


1861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조선을 찾은 깔래 신부는 문경 등 경북 북부에서 주로 사목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중국으로 피신했다. 이후 조선 재입국을 시도했으나 건강이 쇠약해져 본국 프랑스로 돌아갔다. 더는 선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그는 시토회에 입회, 조선을 위해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다 1884년 남부 모벡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안동교구는 교구 설립일이자 124위 복자 기념일인 5월 29일 ‘하늘에서 다시 만난 깔래 신부와 박상근 복자’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한다. 깔래 신부 장례가 끝난 날도 5월 29일이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