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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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멈추지 않았다, 산재사망 노동자 가족들의 눈물

참 빛 사랑 2024. 1. 9. 14:19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눈물이 나도, 가슴이 아파도,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어본다. 내 아이 이야기를 하며, 잠시나마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마저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프지만 내 아이를 떠올릴 수 있기에 웃을 수 있고, 웃을 수 있기에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본지는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가족을 최근 잇달아 만났다.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을 안고 떠난 직장에서 주검이 되어 돌아오리라곤 어떤 부모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가진 아픔의 크기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이제는 곁을 떠나버린 자녀와 가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름다웠던 추억에 웃음 지으려는 유가족의 모습에서 다시 희망을 떠올리길 기도했다. 새해, 아픔 속에도 빛의 희망이 이들에게 떠오르길 바라며 산재사망 노동자들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 김동호씨. 김씨는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일하다 2023년 6월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 강보경씨. 강씨는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2023년 8월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 김용균씨. 김씨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2018년 12월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곁을 떠나버린 아이들

“병원 응급실 교수님께서 심폐소생술을 1시간 20분 하셨다고 해요. 어떻게든 살려보려고요.”

고 김동호(니콜라오)씨는 2023년 6월 19일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폭염 속 주차관리 업무를 하던 중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주차장 업무를 하느라 계속해서 폭염에 노출됐고, 적절한 휴식시간 없이 과중한 업무를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동호씨는 이날 오후 7시 5분쯤 쓰러져 9시 25분 3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층마다 얼음물만 비치했더라면 동호는 지금 저희 곁에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 김길성(요한)씨는 “아들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사고가 났다”며 몹시 슬퍼했다. 동호씨가 세상을 떠나고 열어본 그의 휴대전화에는 하루 걸음 4만 3000보가 기록돼 있었다.

“애가 눈을 뜨고 죽었더라고요. 눈은 감고 가라고 쓰다듬으니 눈을 반만 감더라고요.”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하청업체 노동자 고 강보경씨의 어머니 이숙련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봤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 처음 전화는 누나 강지선씨가 받았다. “통영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동생 이름을 대면서 안치실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주한 보경씨.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가족은 눈물만 흘렸다. 2023년 8월 11일 오전 10시 8분. 보경씨는 부산시 연제구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 6층 높이에서 거실 창문 교체 작업 중 떨어져 30살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안전장치는 없었고, 선풍기 한 대 없는 쉼터에는 플라스틱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안전 불감증이란 폭력으로 젊은이들을 떠나보냈다.



 
고 김동호씨의 아버지 김길성(요한)씨.

아직도 매일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동호니? 어디야?”
그날 아들의 휴대전화엔 하루 걸음 4만 3000보가 기록돼 있었다


보고 싶은 내 아이

삼 형제 중 둘째였던 김동호씨는 밝은 성격으로 애교가 많았다. 취업해서는 생활비를 보태며 때가 되면 가족 선물과 용돈도 챙겼다. 퇴근해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가족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동호씨가 세상을 떠나고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집안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동호씨가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도 울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아버지 김길성씨는 “동호가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아직도 보일 정도”라며 “동호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고 했다. 김씨는 매일 동호씨의 휴대전화로 전화한다. “동호니? 어디야?”, “….” “이렇게 물어보곤 해요. 대답은 없지만, 그렇게 혼자 동호와 이야기하다 전화를 끊습니다.”

강보경씨는 어릴 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장 역할을 했다. 돈을 모아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이 떨어지지 않게 챙기던 아들이었다. 어딜 가나 자신의 위치를 어머니에게 알리고, 어려운 가정환경을 탓하지 않고 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학교 급식소에서 남은 반찬을 얻어 집에 가져오던 속 깊은 아들이었다. 그런 보경씨가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가족은 모든 걸 잃었다. “아들이 죽음을 당했는데 우린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말로 다 못합니다.” 창밖만 바라보던 어머니 이숙련씨는 아들의 죽음에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 강보경씨의 누나 지선씨와 어머니 이숙련씨.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봤으면 했는데…”
안전장치는 없었고 
선풍기 한 대 없는 쉼터엔 플라스틱 의자만 덩그러니






생명보다 앞선 기업의 이윤

“병으로 쓰러져서 죽었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6억 원을 받고 합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김동호씨가 세상을 떠난 후 안 좋은 소문이 돌았다. 동호씨를 둘러싼 소문은 가족에겐 또 다른 상처를 남겼다. 제때 쉬기만 했더라면, 물 한 모금만 마셨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 앞에서, 기업은 잘못에 대한 인정 없이 온갖 무성한 소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흐렸다. 동호씨는 지난해 10월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았다.

강보경씨 가족은 보경씨가 세상을 떠난 지 103일 만인 지난해 11월 21일 DL이앤씨 측과 합의했다. 누나 강지선씨는 “대표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는 것이 겉으로 보면 의미가 있다”면서도 “처음 저희 제안보다 많이 후퇴한 합의안”이라고 했다. 강씨는 “동생을 포함해 다른 유가족에게도 사과했지만, 합의할 때 유가족이 양보해야 하는 것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강씨에 따르면 DL이앤씨 측은 장례식장에 노무사를 보내 상주들을 따라다니며 합의를 요구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2018년 12월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용균씨 사망 사고. 대법원은 최근인 12월 7일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대표이사의 무죄를 확정했다. 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김용균재단 이사장)는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했지만, 대법원은 원청의 손을 들어줬고, 용균씨 가족의 5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김씨는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로 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역사는 제대로 판단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원청과 하청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죽음 불러…
대법원 판결로 진 것처럼 보여도 역사는 제대로 판단해 줄 것”





안전하게 일할 수만 있다면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 앞에 노동자들은 번번이 쓰러져갔다. 기업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그들 탓으로 몰아갔고, 노동자들의 목숨값은 돈으로 치렀다. 고개는 마지못해 숙였다. 자신들의 과오는 얼마나 깊이 인정했을지.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원청과 하청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노동자들의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라며 “하청이 아닌 원청에서 직접, 철저히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정부가 산업 안전을 관리하는 별도의 부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호씨 아버지 김길성씨는 “생명을 경시하고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존중받는 세상이 꼭 도래하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강보경씨 누나 강지선씨도 “동생의 일을 겪으면서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 세태를 여실히 느꼈다”며 “안전한 노동 환경 조성에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무고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으며, 사고 발생 시에도 곧장 책임을 묻고, 처벌도 제때에 이뤄지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가족이 마음 모아 희망하는 것은 남은 가족의 건강이다. 정부의 제도 변화와 기업의 생명중시 문화 확충, 생명의 가치를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슬픔과 아픔이 조금이나마 줄도록 국가와 우리 사회가 동반하는 관심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하늘로 떠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고통보다, 기억 저편에서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하길 기도한다. 더 이상 고 김용균ㆍ김동호ㆍ강보경씨와 같은 제2의 산재사망 노동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며.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