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뭔가 큰일을 도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가슴 벅찼던 시간 말이다.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그랬다.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바랐다.
그러나 수도자의 하루하루는 아주 단순하고 작은 일들로 메꿔진다. 그것도 똑같은 일들로. 눈을 떠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세수하고, 옷을 입고, 정해진 기도를 하고, 식사하고, 청소하는 등 날마다 하는 이 평범한 일들에 마음을 담는 것이 자기 삶을 송두리째 바치기로 한 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사별 가족들을 만나는 날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모임 장소로 가서 바닥을 쓸고 닦는다. 탁자에 내려 앉은 먼지를 닦아내고, 간식 담을 그릇을 준비하고,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건들을 내려놓는다. 화장실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새 수건과 행주를 걸어둔다. 그날그날의 주제에 맞게 모임 장소를 꾸미고, 꽃이며 화분이며 그림들로 공간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렇게 아래 위층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준비한다.
제대로 식사를 못 하는 분들이 제법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요기가 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는 부드러운 먹거리를 마련한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글이나 그림을 준비하고 위로가 될 만한 음악도 찾아둔다. 꽃 한 송이, 작은 노래 한 곡, 소박한 시 한 구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토닥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것들로 마음이 열리고, 시린 곳이 따뜻하고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내 사도직은 손끝 발끝에서 시작되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고 괜찮다고 말하고, 함께 울고 웃는 동안 완성된다. ‘하느님의 집에서 작은 일이란 없다’라는 성인들의 말씀을 기억하며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마음을 쏟는 것이 내게 주어진 소명에 나를 봉헌하는 방편이다.
최남주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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