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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우울증 소녀를 노리는 손

참 빛 사랑 2023. 5. 28. 15:24
 


지난달 16일 강남의 고층빌딩에서 한 여고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여고생은 우울증 갤러리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여 계획을 세운 후 스마트폰을 이용해 극단적 선택을 라이브 방송했다. 더욱이 갤러리 이용자들은 여고생의 라이브 방송을 녹화해 서로 파일을 공유하며 돌려봤다고 한다.

여고생의 극단적 선택에는 디시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가 있다. 디시인사이드는 복잡한 인증절차 없이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대화 커뮤니티이다. 그 커뮤니티 안에 우울증을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대화방이 있다. 익명으로 글을 쓸 수 있기에 겉으로는 우울증 갤러리라고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미성년자를 노리는 범죄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갤러리에 활동하는 이들이 우울증이 심한 청소년에게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거나 방조하고 있다.

이달 5일에는 우울증 갤러리에서 만난 두 여고생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구조됐다. 두 소녀는 갤러리에 힘든 속마음을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이렇게 살지 말고 계속 죽으라고 한 것이 극단적 선택을 마음먹게 된 계기라고 했다. 이번에도 스마트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했는데, 실시간 댓글에는 ‘그냥 죽어라’ ‘어서 뛰어내려라’는 글이 수없이 올라왔다고 한다.

우울증 갤러리를 이용한 범죄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한 남성이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여성에게 위로해주겠다고 만나 술에 마약성 수면제를 넣고 마시게 한 후 성폭행했다. 어떤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촬영해 소위 ‘능욕’이라는 불리는 글을 붙인 후 갤러리에 ‘전시’했다. 게시물을 본 사람들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혐오의 말로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범죄심리전문가 이수정 박사는 한 방송에 출연해 ‘우울증 갤러리’는 “성착취, 자살 조장, 마약 투약 등 최악의 조합이 다 모인 진화된 n번방”이라고 했다. JMS 같은 유사종교로 이끌려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했다. n번방을 고발했던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온라인 범죄현장”이라며 우울증 갤러리에 당장 폐쇄라는 온라인 폴리스라인을 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갤러리를 운영하는 디시인사이드 측이 폐쇄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게시물의 저작권과 이용자들의 반발이 이유였다. 정부도 관련 법률이 없어 사이트를 강제로 폐쇄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도 특별팀을 꾸려 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유저들이 익명으로 활동하여 범죄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둘 수는 없다. 폐쇄가 힘들면 차단이라도 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해사이트 차단 심의를 시작했지만 한참 늦었다. 서둘러 결정해 빨리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 경찰도 성착취와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이들을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구조된 청소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이 갤러리뿐이었다고 했다. 지금 청소년 청년들은 입시 지옥을 거친 후 치열한 경쟁사회로 내몰리며 정신적 위기의 상태에 놓여 있다. 마음이 위태로운 이들은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도 생명운동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OECD에서 자살률 1위이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다. 대입 하나만 바라보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보내는 청소년들은 경쟁에 또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 그들을 우울증까지 몰아간 세상이 야속하다. 더욱이 우울증에 걸린 소녀에게 접근하여 ‘위로’라는 미끼로 범죄를 노리는 사냥꾼이 내 스마프폰과 내 컴퓨터에서 활동하고 있다니. 세상이 우울하다.

조승현 베드로 신부(CPBC 보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