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른바 ‘워싱턴 선언’으로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겼다. 합의문 구성을 보면, 우선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를 완전히 신뢰하며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등장한다.
북한의 핵 위협 해법으로 우리도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주장이 많았으나 미국이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사용에 대한 억제를 위한 조치는 워싱턴 회담 두 번째, 세 번째 내용에 담겼다. 한미는 차관보급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하는 것을 통해 한국에 보다 심화된 핵 관련 정책 결정을 보장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 핵무기를 탑재한 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정례적으로 한반도에 전개 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선언은 북한의 핵 기술이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기 도입은 금지하면서도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확장억제를 위한 조치를 담았다는 평가다. 최근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던 탓에 자체 핵무기 보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번 발표로 그런 주장은 잦아들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하지만 워싱턴 선언에 담긴 확장억제가 곧 한반도 평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우려스럽다.
일반적으로 평화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되곤 한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소극적 평화’라고 이야기한다. 워싱턴 선언은 한반도 핵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기획이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극적 평화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 이에 비해 ‘적극적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갈등을 조율하며 구조적, 문화적 폭력을 제거해 갈등의 원인이 해소된 상태를 말한다. 워싱턴 선언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며 더 위험한 방식을 막았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으나, 확장억제만을 다룰 뿐 근본적 갈등 조정에 대한 접근이 없다는 점은 적극적 평화 개념으로는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의견에, 그럼 핵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을 두고만 보라는 것이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핵무기 사용도 함께 논의하고 전략자산이라 불리는 엄청난 화력의 무기도 더 전개하기로 했으니 얼마나 잘된 선언이냐는 주장이다. 물론, 저 역시 가만히 핵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용인하고 이해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핵 위협은 어떤 경우라도 용인될 수 없고 중단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하는 평화는 단순히 억지력만으로 완성된다고 말하지 않기에 그렇다. 상대 국가의 위협을 더 큰 힘으로 눌러 억지시키려는 것이 일정 부분 현실적인 정책일 수 있으나, 교회는 그 기반에는 극단적 불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따라서 평화의 여정은 확장억제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확장억제를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근본적인 신뢰 구축을 위한 말과 행동에 더 큰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튀어나온 용수철을 힘으로 누르면 용수철의 길이는 줄어들지만, 용수철의 힘은 그만큼 더 응축된다. 겉으로 보기에 수그러진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더 큰 긴장이 자리하고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이젠 확장억제에 들이는 공과 노력만큼, 서로가 신뢰를 회복하는 길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억지력은 힘의 균형이 아니라 공포의 균형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를 두고 평화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수용 신부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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