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국립공원 오대산 자락인 ‘진부’다. 이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급학교 진학 대신 고향에 남아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고향에서 명절을 쉬고 상경하다 우연히 검정고시 학원생 모집 광고를 보고 학원에 등록해 중학교 졸업 과정 공부를 하게 됐다. 어려운 과정에서 만난 학원 동료들과 우정을 쌓은 과천 대공원 소풍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당시 학원 강의를 들으려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건국대 입구에서 59번 버스를 타고 신설동에 내려 학원에 가야 했다. 일요일도 없이 새벽 강의를 들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학원 강의가 끝나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회사로 출근하는 빡빡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3년간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하게 됐다. 1996년 산업체 위탁생 교육과정이 신설돼 야간 전문대 전자통신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엔 학교에서 공부하는 삶이 다시 시작됐다. 부족하지만 2학년 때 국가기술 자격증을 취득하자는 생각으로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학원에서 자격증 공부와 학교 수업에 매달렸다. 그래서 통신 분야 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직장도 옮길 수 있었다.
지금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신기하다. 누구 하나 시킨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묵상해 보면 ‘성령께서 나에게 함께해 주시어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뿐이다. 그땐 신앙을 갖지 않은 시절이지만, 돌이켜 보면 주님께서 함께해 주셨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느끼고 감사드린다.
야간 대학과 자격증 취득 공부를 할 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참 힘들고, 저녁 시간에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참아야 하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희망이 없고 미래가 안 보이던 시절, 내 한 몸 뉘일 곳도 없이 살아야 하는 어려운 삶이었다. 하지만 창밖 어둠 속에서 여명 뒤에 비쳐오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잠에서 깨어나 밝아오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럼에도 매사에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힘과 지혜를 주신 사랑이신 하느님을 가끔 원망할 때가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주셨나요? 왜 제게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겪게 하셨나요? 정말 사랑이신 하느님이 맞으세요?’ 하고….
그렇지만 곧 다시금 깨닫는다. 내 인생에서 좋은 것, 안 좋은 것 모두 나의 삶이며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며 더 단단해지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큰 은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13)
테살로니카 1서의 말씀도 함께 전하고 싶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테살 5,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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