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대교구 초전본당 용봉공소 전경. 출처=「공소(한국 천주교회의 뿌리)」
하느님의 자비 축일 전날 낯선 공소에서 신앙을 다지게 된 사건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 급한 일을 처리하려고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예상과 달리 도로 위는 행락차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무지 제시간에 도착할 방법이 없자 포기하는 마음으로 길안내기로 가까운 성당을 검색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성체조배로 마음을 잡아보려는 단순한 마음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거리는 낯선 시골 풍경이었고 점점 외지고 휑한 마을로 달리게 됐다. 그날따라 강풍주의보가 내려 마을 비닐하우스들도 을씨년스럽게 펄럭였고 인적도 없었다. 마을을 두 바퀴나 돌아 찾아간 곳은 공소에서 갓 승격한 성당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고 주변엔 축사가 있었다. 이런 곳에도 성당이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입구의 송덕비와 비문을 읽지 않았다면 스쳐 지났을 만했다. 해 질 녘 새들이 성당 앞 나무에 깃들여 지저귈 뿐 정적 가득한 마을은 내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한 수녀님을 기리는 마을 분들의 사랑과 정성 어린 비문이 새겨진 그곳은 대구대교구 성주 초전본당 관할공소였던 용봉성당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성체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인근 축사에서 나는 분뇨 냄새가 성전에 진동했다. 아!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는 이제껏 배부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내 통회의 눈물이 솟구쳤다.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공소를 돌아보지 않았던 나의 무관심과 편리했던 신앙생활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울고 나니 비로소 눈앞에 본당을 위한 기도문이 보였다. ‘저희에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앙의 터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청하오니 본당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사랑이 자라게 하소서….’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이곳 신자들의 깊은 신심이 느껴졌다.
난 통회했다. 그날 저녁 이후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더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서 가난하고 어려운 공소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차례 다른 지역의 공소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공소 신자분들의 삶이 성심이며 내가 지향해야 할 기도의 삶임을 느꼈다. 따뜻한 환대와 친절과 온유를 통해 배운 것이 참 많았다. 이제 나도 그들과 함께 전교와 평화의 삶을 나누며 살아갈 사명을 깨달았다. 평신도 희년에 다시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이끌어준 모든 그리스도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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