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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054년 가장 먼저 갈라졌지만 사도전승 이어오는 ‘형제 교회’

참 빛 사랑 2024. 1. 16. 15:30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제단. 임종훈 신부는 형제 그리스도인이 방문했다고 특별히 지성소 문을 개방했다.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을 펼쳐온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가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협의회 창립 목적은 ‘분열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의 재건과 교파 상호 간의 신앙적 친교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복음적 삶의 증거’라고 명시하고 있다.

신앙과 직제의 차이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갈라진 형제들이다. 그중 가장 먼저 갈라진 형제가 정교회다. 더구나 올해는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설립 20주년이다. 그리스도인 일치 주간(18~25일)을 맞아 가깝고도 먼 한국 정교회를 형제의 이름으로 찾았다.



갈라진 형제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초행자가 쉽게 찾을 수 있을 만큼 눈에 띄는 곳은 아니지만, 높은 건물 사이로 삐져나온 비잔틴 양식의 둥근 돔은 정교회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 웅장함에 다소 압도되며 문을 넘었을 때, 한국 정교회 대교구 임종훈(안토니오스) 신부가 마치 오래 기다린 형제를 맞이하듯 부드러운 미소로 환대했다. “잘 오셨습니다.” 정교회 사제와의 대화에서 ‘잘 왔다’는 의미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정교회를 글이나 영상으로 스치듯 보고 많은 분이 오해하곤 합니다. 심지어 이단으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일단 관심이 부족하고, 한국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장을 방문하는 게 중요하죠.”

임 신부는 “정교회를 모르면 그리스도교의 반 이상을 모르는 거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서방과 동방 교회의 대분열 시기를 1054년으로 보고 있으니, 분열 이전 함께 교리를 형성하고 신앙을 고수했던 1000년의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사도로부터 이어오고 있다는 믿음 아래 형제 교회는 각자 자리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성장했다.
 
한국 정교회 임종훈 신부가 성 막심 성당(소성당)에서 성찬예배 때 사용되는 제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일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형제 교회는 많은 부분 닮았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따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고, 일곱 성사를 거행한다.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성경과 성전(거룩한 전승)에 근거한다. 세례 때 세례명도 정하면서 성인들의 공적을 기린다.

하지만 갈라진 1000년의 세월만큼이나 서로의 방향도 뚜렷해졌다. 니콜라스 대성당에 들어서니 화려한 성화가 벽과 천장을 가득 메웠다. 정교회에서 성화는 눈으로 보는 성경이라 여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가톨릭에서는 성수를 찍고 들어가지만, 정교회 성당은 초를 봉헌하며 들어간다. 사제가 성찬예배(미사)를 하는 지성소(제대)가 회중석과 분리돼 있고, 회중석 오른쪽 앞에 주교좌가 있는 차이점도 있다. 아울러 그리스 전통에 따라 단성 음악 형식의 기도문으로 장엄하게 진행된다. 사제는 예배하는 동안 입당 예식과 평화의 인사, 성찬 전례를 제외하곤 회중석이 아닌 제대를 바라본다. 또 누룩이 든 큰 빵을 사용하고, 신자들은 성체와 성혈을 동시에 모신다. 입당 예식과 복음서 봉독, 설교, 성찬 전례까지 주일 예배 시간은 1시간 40분. 성무일도에 해당하는 성무일과를 성찬예배 전에 함께 바치는데, 그러면 주일 기도와 예배에만 총 3시간 정도 걸린다.

임 신부는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예식에 의미가 담겨 있고, 정성스럽게 거행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임 신부도 그 거룩함에 매료돼 정교회 사제가 됐고, 현재 150여 명의 신자가 주일 성찬예배의 거룩한 전례를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교회 사제는 서품 전 결혼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미혼을 선택할 경우 수도원으로 들어가 사제나 주교가 되고, 기혼을 선택하면 임 신부와 같은 교구 사제로 교회에 봉사한다.

임 신부는 “이처럼 현실적인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바탕은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부들의 전통에 기반을 둔다”며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도 교부들 문헌을 해석하는 일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도교는 정말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의 240년 역사도 자랑스럽고 위대하지만, 2000년 모두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사입니다. 초대 교회부터 이어져 온 영적 양식들을 풍성하게 누렸으면 합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암브로시오스 대주교를 비롯한 사제단이 지난 12월 25일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성탄절 축일 예배를 거행하고 있다. 한국 정교회 제공

용서와 화해의 길

두 형제가 갈라진 이유로는 신학적 논쟁(필리오케)과 더불어 서로 다른 언어, 문화, 관습 등의 차이를 꼽는다. 하지만 임 신부는 교황의 수위권을 가장 큰 원인으로 봤다. 그리고 200년 후인 13세기 초 콘스탄티노플(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점령한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1054년 상호파문 이후 900년이 훌쩍 넘은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는 예루살렘 성지에서 극적으로 만났고, 이듬해 상호파문을 취소했다. 전 세계 언론들도 ‘1000년 만의 만남’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정교회를 방문해 십자군 침략을 정식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교황청에서, 성 안드레아 축일인 11월 30일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임 신부는 ‘1000년 만의 만남’ 후 50년이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정교회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의 만남을 화해의 큰 상징으로 봤다. 정교회는 하나이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주교들은 동등한 권위를 가진다. 다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동등한 자 가운데 첫 번째’라는 위치가 부여돼 공식적인 정교회 수장이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존경을 드러내는 의미로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 손에 입을 맞추려 했다. 정교회에서 손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축복을 청하는 것이다. 총대주교는 성급히 손을 빼고 서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임 신부는 “과거에는 교황의 수위권이 큰 문제가 됐지만, 그 행동 하나로 교황의 겸손함이 드러났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대를 극진히 존중하면서 갈등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어 “두 어른의 행동이 바로 형제 교회로서 일치를 향한 모습”이라며 “한국에서도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를 통한 만남 이외에도 활발한 교류가 생기길 간절히 바란다”고 희망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전경.

한국 정교회 대교구

124년 전인 1900년 한국에 전파된 정교회는 격변하는 사회ㆍ정치적 상황과 여러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오다 2004년 한국 정교회 대교구로 승격됐다. 소티리오스 대주교를 거쳐 2008년부터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한국 정교회 대교구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국 정교회 대교구 설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전체 신자 수는 3000여 명, 전국 8곳에 9개 성당을 신부 9명이 사목하고 있다. 수도원도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양구 두 곳에 있다.

임 신부는 “교구장 주교는 사도의 계승자이기 때문에 교구 설정은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며 “20주년을 맞아 하나였던 교회를 다시금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느님께서 큰 기적과 자비를 베풀어 언젠가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이전에 서로의 차이를 비판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분이 정교회를 방문하고 다시 각자 교회로 돌아가셔서 풍부한 영적 보화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