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 하느님의 힘"(1코린 1,24)
사제품을 준비하면서 설레던 기억이 납니다. 사제품을 받는 일은 단순히 하나의 행사를 치르는 일이 아니라, 사제로 살아가겠다는 자기 결단의 총합이요 정점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런 뜻에서 사제 수품 때 성구를 정하고 그것을 상본에 인쇄해 기념 상본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특정한 한 성경 구절이 아니라, 예언자의 말을 나름대로 인용하고 편집한 사제 수품 성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는 문구였습니다.
'주님의 것이라 불러주셨음에 감사드린다'는 자세는 나의 것, 나의 뜻보다는 '주님의 것, 주님의 뜻'을 더욱 소중하게 헤아리며 살아가겠다는 자세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첫 결심은 그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점점 강해진 것이 아니라 점점 희미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상본에만 머물러 있는 문구가 됐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저에게 주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며 새로이 사제적 삶을 다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한 것이 '그리스도, 하느님의 힘'입니다. 나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정신 안에서 모두 구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힘'은 다른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흔히 말하는 세상의 힘이나 가치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의 방식과 가치에서 나오는 힘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달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4).
주교직을 수행하며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을 늘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문구가 상본에만 머물러 있는 장식 문구가 아니라, 제 안에 살아서 늘 활력을 주는 말씀이 되도록 해야 하리라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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