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선 성 요한 바오로 2세(왼쪽) 교황과 헬무트 콜(가운데) 전 독일 총리, 에버하르트 디프겐 전 베를린 시장. OSV
이데올로기 대립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5년이 흐른 지금, 냉전의 종식에 앞장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업적이 회자되고 있다. 교계 외신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개전 2년여가 흐른 만큼 성인의 평화를 향한 목소리에 집중했다.
미국 가톨릭통신(CNA)과 미국 가톨릭방송 EWTN 등은 베를린 장벽 붕괴 35주년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업적을 기렸다. 냉전 종식에 일조하고 평화를 강조한 성인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지켜봤던 EWTN 독일지국 마틴 로스와일러 국장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아니었다면 독일 통일은 없었을지 모른다”고 술회했다. 또 EWTN은 성인과 친밀했던 전 독일 쾰른대교구장 요아킴 마이스너(2017년 선종) 추기경의 생전 발언을 인용해 “그가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했던 역할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 모습.
여러 증언처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8년 즉위 직후부터 냉전 종식과 평화를 위해 힘썼다. 이로 인해 ‘철의 장막’(냉전 비유)이 무너지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9년 당시 ‘연대노조’와 소련 영향권에 있던 정부 간 갈등이 극에 달하던 모국 폴란드를 방문해 인권을 호소했다.
특히 그는 1981년 이슬람 극단 세력에 의한 암살 미수 이후에도 평화를 위해 힘쓰며 파티마의 성모께 소련을 봉헌했다. 2022년 우·러 전쟁이 발발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티마의 성모님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봉헌하면서 성인의 기도가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유효한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그의 수행비서를 지낸 스타니시와프 지비시 추기경은 바티칸 뉴스에 “성인의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스도를 위해 문을 열어라’라는 메시지는 현대 사회와 교회, 다양한 공동체와 관련돼 있다”면서 “평화와 생명 보호, 노동자 권리 등을 위해 헌신한 성인의 행적과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CNA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향한 정치인들의 발언도 재조명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초대 대통령은 교황의 영향력이 소련 붕괴를 이끌어냈다고 인정했다고 전해진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1996년 베를린 장벽이 위치했던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방문했다. 콜 전 총리는 이 상황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례’(the memorable walk)라고 칭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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