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동네 산에 간다. 무엇보다 자연은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줘서 좋다. 그런데 요즘 산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 스마트폰을 끼고 있다. 젊은이나 나이 지긋한 중년이나 모두 이어폰을 끼고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린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음악을 크게 켜놓고 큰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자연을 즐기기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산을 찾은 탓일까? 가끔은 산에 대한 예의를 찾아보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기야 간혹 어떤 수녀도 “걷는 것이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서”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운동을 나가기도 하니까. 물론 나도 음악을 참 좋아한다. 수녀원 들어오기 전에도 나 홀로 음악에 심취해 나만의 느낌을 즐기곤 했다. 그때만큼은 혼자여도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게 ‘느꼈다’가 맞겠다. 음악만으로도 작고 어둡던 마음속 동굴이 밝고 환한 나만의 세상이 되니까.
수녀가 되고서도 한동안 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도생활은 나에게 정제된 규율 안에서 절제된 생활습관을 요구한다. 그런데 음악은 이런 틀마저 깨고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단순노동이나 운전을 할 때 혹은 나 혼자 머물 때면 음악을 듣곤 했다. 육체적으로 고달프거나 외로울 때 더 그런 것 같다. 물론 음악은 영혼과 마음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음악은 감정과 가슴의 언어로 우리에게 용기와 사랑, 위로, 기쁨을 주며 감동과 행복도 안겨준다. 음악을 듣는 순간은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이 채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음악에 의존하게 되고 여기서 만들어낸 ‘느낌’을 지속해서 요구하게 된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내 몸에서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느낌이 들면서 그 느낌에 계속 머물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감정과 느낌을 민낯으로 마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마음이 시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음악을 틀고 마음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으며 기도하면 더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음악을 틀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기도는 잘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기도 중에 정말 하느님을 만난 것 같은 충만한 느낌에 행복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당을 나온 순간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하느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성당이라는 고요하고 거룩한 공간이 주는 느낌만 만끽한 것이다.
진짜 기도는 느낌이 좋은 차원을 넘어 깊은 내 의식의 성찰까지 건너간다. 그때는 기도 후에 더 슬퍼지거나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기분 좋은 느낌보다는 슬픔이고 아픔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 자체가 하느님께 열려 있기에 슬프고 아프지만, 진짜 행복하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각 방식이 느낌과 기분을 전환하는 오락처럼 변하고 있다. 갈수록 주의를 기울여 의식적으로 느끼는 지각 방식이 아닌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느끼려고 한다. 기분이 좋으면 모든 것이 잘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좋은 기분을 만들려고 한다. 음악, 드라마, 게임으로. 음식이나 마약으로. 어떤 감정의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외부가 만들어준 느낌 때문에 내면에 있는 진짜 감정과 만나기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도 음악 없이 심심함을 음미한다. 힘들고 외로워도 음악 없이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나 스스로 느낌을 창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칠고 심심하고 힘들어도 있는 그대로 나만의 감각으로 홀로 머무는 공간을 확장해 나가고 싶다. 나와 나 사이 그리고 하느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떠한 중재 도구 없이, 그냥 온전히 나라는 존재로만 느끼고 머물다 보면 관상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성찰하기
1. 음악도 마약처럼 중독을 유발하는 뇌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고 해요. 마약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거지요.
2. 음악을 들을 때는 음악 그 자체를 즐겨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것이 집중력을 높여주고 뇌의 피로를 풀어주니까요.
3. 심심하고 지루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요. 거기에서 진짜 좋은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4. 운동이나 산책할 때 스마트폰 없이 내 몸의 감각을 최대한 즐겨요. 음악 없이 나와 나, 나와 자연 그리고 나와 하느님을 느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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