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도자들은 매년 새로운 소임이 주어지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늘 그러하듯 나는 그동안 함께 살았던 한 수녀님을 보내야 했다. 서운했지만 헤어지고 만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인지라 배웅 후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카카오톡 메신저를 열어본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랑 가득 담고 갑니다.” 정말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슬퍼졌다. 게다가 ‘○○수녀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라는 메시지는 헤어진 수녀님의 부재를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단체 채팅방이라는 가상 공간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걸까? 나는 그 곳에서 어떠한 소통을 하며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을까? 경험에서 오는 정보는 더 깊이 기억 속에 저장된다. 하지만 단체 채팅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하기야 전체와 소통하는 채팅방서 수녀님과 나와의 특별한 사연이 있을 리 없다. 그동안 주고받은 메시지를 무심히 들여봤다. 전체 알림사항만 가득했고 간혹 몇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느낌은 무엇일까? 카카오톡 메신저는 감정을 운반해주는 소통의 공간이다. 채팅방에서 주고받는 글은 말에 가깝기에, 가벼운 느낌이다. 단체 채팅방은 단순한 공간(space)이지만 과도한 감정을 연속적으로 주고받는다. 게다가 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진짜 장소(place)와 뒤섞여 더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촉진해줬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카카오톡이란 공간과 실제 장소의 경계가 혼란스러웠던 일이 생각난다. 작년 연말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와 동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언니는 사진을 찍어 식사하는 모습을 가족 채팅방에 올렸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불평을 올렸다. 그 시간에 아들은 아내의 조산기 증상으로 병원에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니는 하루 내내 며느리 걱정하다가 잠시 동생들과 기분을 전환하고 있었던 터였다. 하지만 메신저를 열어본 아들은 엄마와 이모가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이 머무는 병원에서 놀고 있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주고받는 카카오톡이라는 공간은 ‘지금’이란 시간에 정지되고 진짜 장소에 대한 감각이 서로 뒤섞여 거리감을 느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을 하는 대부분 우리는 보이는 대로 반응하고 즉각적으로 대화한다. 나만의 공간이 공동의 장소가 되고, 공동의 장소가 개인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실제 세상에서는 한 번에 두 장소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다. 시간이 필요하고 고달픈 여정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이버 세상은 다른 공간에 가기 위해 지금의 장소를 비울 필요는 없다. 그래서 서로의 복잡 미묘한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기보다 관광객처럼 훑어 지나가는 흥미로운 감정에 더 지배된다.
언니의 아들은 부인과 병원에 단둘이 있었지만, 채팅방에서는 엄마와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엄마가 말한 만큼, 보여준 만큼만 보고 느끼고 판단한다. 그러니 즐겁게 놀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불안한 아들을 더 외롭게 했으리라.
영국의 지리학자인 에드워드 렐프는 “인간다움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비롯되며 자신이 머무는 장소를 잘 아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점차 실존하는 ‘장소(place)’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구경하는 ‘사이버 공간(space)’에 대한 감각이 뒤섞여서 진짜 장소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 대해 의식하고 이해하면서 살고는 있는 걸까? 혹시 정말로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찰하기
1. 나는 얼마나 자주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훑어 지나가는 공간(space)에 머물까요? 호흡을 가다듬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과잉감정이 가득한 공간, 서로를 소외시키기도 하는 곳. 그래서 더 외로운 것은 아닐까요?
2. 혹시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있나요? 나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말해주는 장소, 의미가 가득한 장소를 찾아가요. 그곳이 바로 나를 말해주는 곳이며 내가 아는 장소입니다.
3. 렐프는 ‘인간다움’은 의미 있는 장소에서 산다는 것이며, 그 장소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짜 세상과 사이버 공간 사이에 약간의 문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잠시라도 멈춰 서로 다른 장소에 대한 의미를 음미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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