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출장을 다녀와서인지 몸은 고단하고 밀린 일이 많아 마음이 조급하다. 그럴 때 누군가 찾아오면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관리를 하지만, 그 또한 피곤하다. 게다가 어떤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마구 늘어놓을 때는 짜증이 올라온다. 대충 들어주고 돌려보낸 뒤 다시 집중해서 무언가 하려는데 창문 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게 들려왔다. “밖에서 주차문제로 난리 났어요. 빨리 좀 어떻게 해줘요.” 그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 온도가 올라오면서 열이 후끈 달아오른다. 순간 뛰쳐나가 ‘아니, 이런 것도 해결 못 하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꾹 삼켰다. 하지만 이럴 때는 말을 자제하는 것이 상책이다.
바쁠수록 이성이 작동되지 않는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쉽게 흥분하기에 인내하기 어렵다. 자칫 후회할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러면 상황은 더 꼬이고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스스로 말한다. ‘이 작은 순간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수련이다.’
그렇다. 나 자신만 돌아봐도 큰일 앞에서는 대범하게 마음을 크게 쓰려고 한다. 그래서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앞에서는 스스로 더 작아지다 못해 쩨쩨해진다. 특히 분주할 때는 더 그렇다.
하지만 바쁘다고 속도를 내면 본래의 목표지점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다. 그래서 더 헤맨다. 모든것을 뒤틀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속은 더 시끄럽다. 이런 나 자신을 달래고 통제하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스트레스란 고달픈 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감정에서 온다”고 말한다. 내면의 바다에 격랑이 일면 정말 많은 것을 잃는 듯하다.
살레시오 성인은 ‘바쁜 중에도 평화를 간직하는 사람이 가장 완벽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마음수련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려면 바쁠 때 보면 안다. 여기저기서 치고 들어오는 외부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스스로 바라볼 여유만 있어도 좋겠다. 그럴 때 다가오는 사람에게 온유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는지, 흥분된 마음을 의식하고 조절하고 있는지, 극단적 판단을 자제하고 홧김에 내뱉으려는 말을 삼키고 있는지를. 이 정도의 노력만 보여도 나 자신을 후하게 칭찬해주고 싶다.
물론 단순히 올라오는 흥분이나 화를 한순간 참고 억압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게다. 중요한 것은 일상의 매 순간 얼마큼 깨어 대처하느냐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고요한 호흡을 유지하고 평화를 간직할 수만 있다면 성인(聖人)의 길에 들어섰음을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문제는 일상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시시각각 예상치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 우리의 일상이다.
살레시오 성인은 매일 간절하고 절실하게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주님, 어떤 사람을 만나도 저는 결코 그들이 무시당하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오만하든 냉정하든, 사납고 교묘하든 그 누구도 저는 절대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비웃거나 빈정대는 마음을 가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오늘도 저에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지 그들을 존중하며 잘 듣고 적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참으로 대단한 기도가 아닌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들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싶은 그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기도다. 나도 매일 간절한 마음을 모아 이 기도를 바쳐야겠다. 그러다 어느 날 ‘분주함 속에서도 언제나 평화를 간직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성찰하기
1. 바쁠 때일수록 과다하게 속도를 내지 않았으면 해요. 자칫 목표를 지나갈 수도 있어요.
2. 마음속이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때 한걸음 물러서 내 마음속 풍경을 사랑스럽게 바라봐요. 이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3. 작은 일일수록 소중하게 다뤄요. 바로 그 작은 일이 나를 큰 사람으로 성화시켜줄 기회라는 것을 믿어요.
4. 살레시오 성인의 기도를 우리의 마음을 담아 매일 해봐요. “주님, 제가 만나는 사람이 오만하든 냉정하든, 사납고 교묘하든 그 누구라도 그들을 존중하며 잘 듣고 적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살다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9)분노로 쌓아올린 마음의 벽. (0) | 2018.06.16 |
---|---|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6)잃어버린 장소, 잃어버린 ‘인간다움’. (0) | 2018.06.11 |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5)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는 어른들 안 좋아한다. (0) | 2018.05.27 |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5)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0) | 2018.05.18 |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4) 스크린의 ‘재미’에서 미사의 ‘의미’로.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