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야고 1,22-25)
중학생인 아들이 갓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공항에서 로마로 여행 오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곁에 있던 한 외국인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한 듯했습니다. 공항 직원이 초등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와 이탈리아 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대화 중간중간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엄마의 나라’ 언어로 내용을 전했습니다.
이탈리아 말에 능숙한 아이에 비해 엄마는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어른의 눈을 하고 있었고 엄마는 불안을 담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자신의 아이가 들려주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마법에 걸려 엄마와 아이의 영혼이 바뀐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제가 잘 해결되었는지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뒷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은 어른의 눈을 한 아이 때문이었을까요? 아이의 눈을 한 엄마 때문이었을까요?
최근 로마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이탈리아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에 출간된 저희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은 무척 높아졌고 점점 우리 로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화자로 참여했고 1시간 넘게 진행된 행사 내내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중간중간 저의 이탈리아 말에 실수가 있으면 아이들이 작게 속삭여 고쳐주었습니다. ‘이탈리아 살이’ 19년, 살다 보니 이런 기회도 만들어진다는 기쁨과 동시에 19년을 살았다고 하기엔 부족한 이탈리아어 실력을 마주하고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언어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공부하기를 미뤄왔던 이유는 저 스스로 부족함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비추어보기 두려워 물러서기만 했습니다.
언젠가 아들에게 “걱정을 한다고 뭐가 달라져?”라고 물은 적 있습니다. 아들이 답했습니다.
“엄마, 뭐가 달라지진 않지. 걱정은 그냥 감정이야. 그런데 걱정을 안 하는 방법은 있지. 다 배워놓으면 되잖아. 일주일, 일주일 계속 배우는 거야. 그런데 내가 이걸 벌써 알아. 그런데도 못할까 봐 걱정돼. 이쪽은 배우는 길이고, 저쪽은 ‘아 몰라, 아니까 안 할래’ 이런 길이야. 내가 이걸 몰라. 그런데 난 너무 잘하고 싶어. 그러면 배우는 쪽으로 가는 거야. 그런데 몰라도 안 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지. 그래서 결론은 걱정이 모든 사람에게 꼭 배우게 한다는 것은 아니야. 그래도 걱정은 있어야 돼. ‘걱정’이 없으면 ‘뿌듯’이 없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선 나아가는 법은 알지 못합니다. 배우지 않고 부족함을 채우는 법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정했다고 모두가 배움을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쪽과 저쪽, 두 길 사이에 서서 저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나약함을 고백합니다. 고백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부끄러움을 마주하는 용기. 외면 대신 직면을 선택할 용기. 이탈리아 살이 19년, 다시 이탈리아 말 공부를 시작합니다.
김민주 에스더(크리에이터·작가, 로마가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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