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 백명을 태우고 지중해를 건너다 6월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전복된 낡은 어선. 바티칸뉴스 캡쳐
타이타닉호 잔해 탐사에 나섰다가 내부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한 심해 관광용 잠수정 타이탄호. OSV
최근 그리스 해안에서 발생한 난민선 전복 사고는 ‘나 몰라라’ 한 채 관광용 잠수정 실종 사고에 관심을 쏟은 국제 사회와 언론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달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난민 밀입국선이 전복돼 500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가난과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던 파키스탄, 시리아, 이집트 사람들이다. 여성과 어린이 100여 명이 갑판 아래 화물칸에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구조된 사람들 중에 여성과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다. 더구나 반이민 정책을 펴는 그리스 정부가 엔진 고장으로 멈춰선 난민선을 방치해 최악의 인명 사고를 초래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나흘 뒤 비운의 유람선 타이타닉호 잔해를 보려는 억만장자 5명을 태우고 북대서양 심해에 들어간 잠수정 ‘타이탄’이 실종됐다. 미국 해군과 해안경비대는 물론 캐나다까지 나서 군용 수송기와 대잠초계기 등을 동원해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5명은 전원 사망했다고 관계 당국이 발표했다. 서구 선진국은 난민선 참사와 달리 잠수정 실종과 수색 작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서방 언론들도 잠수정 수색 과정과 남은 산소량, 억만장자들의 유산 등에 대한 보도를 연일 이어갔다.
난민들에게도 같은 노력 기울여야
미국 가톨릭 교양지 ‘아메리카’는 “전 세계 미디어는 타이탄 참사를 숨 가쁘게 보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주민들의 끔찍한 희생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또 “억만장자들(1인당 투어 참가비 3억 4000만 원)의 구조 노력에 수백만 달러가 쓰이고 있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에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스릴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선 난민들에게도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유럽 국가들이 구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지적하고 유가족들의 분노를 전했다. 이번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인도 출신의 압둘 카림은 인터뷰에서 “5명을 태운 잠수정이 물에 빠진 수백 명의 난민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조의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의 무게조차도 빈부 간 차이가 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난민 공동묘지로 변해가는 지중해
제네바 주재 교황청 유엔 옵서버 존 퍼처 몬시뇰은 6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 연단에 올라 난민들의 안전한 이주 경로와 정기적인 이동 경로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난민들은 위험천만한 여정 중에 혹독한 선택을 해야 하고, 때로는 위험한 환상이나 파렴치한 인신매매범의 희생양이 된다”며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이주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공동 노력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참사 발생 나흘 뒤인 6월 18일 주일 삼종기도 시간에 슬픔과 애도를 표시했다. 교황은 특히 그리스 일간지가 입수해 공개한 사고 영상을 언급하며 “바다는 잔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난민선은 안정적인 속도와 정상 항로를 운항 중이었다”는 당국의 발표를 문제 삼으면서 신속히 구조에 나서지 않은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중해에서는 대여섯 건의 난민선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2월에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해안에서 난민선이 난파해 76명이 사망했다. 3월에는 튀니지와 이탈리아 중간 해역에서 총 8척이 침몰해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지중해가 난민들의 공동묘지로 변해가는 현실을 비통해 하며 유럽 사회에 난민 포용을 호소했다. 칼라브리아주 해안에서 난민선이 난파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머리를 숙이고 잠시 침묵한 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같은 일을 제대로 이해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힘을 주시길” 기도했다. 이어 희망을 찾아 떠난 이들의 여정이 죽음의 여정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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