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시리아·레바논·팔레스타인 등 극단 무장조직 박해 피해 신자들 이주, 그리스도교 비율 4%로 급감
“이집트 탈출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아니다.”
인도의 언론인 벤 조셉은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차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성경의 땅’인 고향을 떠나는 현실을 이집트 탈출 사건에 비유했다. 그들이 자유와 일자리를 찾아 지금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도착지에서의 미래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벤 조셉은 아시아 가톨릭 통신(UCAN) 8일 자 칼럼에서 “중동 교회는 신자들의 대량 이주로 인해 불행한 상황에 부닥쳤다”며 그리스도교 발원지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이라크ㆍ시리아ㆍ레바논ㆍ팔레스타인의 그리스도인 숫자는 급격히 줄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중동에서 그리스도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했다. 그리스도교는 서로 앙숙인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사이에서 화해의 전령 역할을 하고, 교육과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율이 4% 아래로 떨어졌다.
이라크의 경우 최근 10년간 이슬람 국가(IS)를 비롯한 극단 무장 조직들의 박해를 피해 그리스도인 50만 명 이상이 고향을 등졌다. 이라크 칼데아 동방 가톨릭교회 바빌로니아 총대주교 루이스 사코 추기경은 최근 성명에서 “이라크는 한때 15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의 고향이었다”며 “이대로 가면 이라크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소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라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중동에서 그리스도인의 귀향을 돕기 위해 대대적인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유일한 국가가 이라크다.
무력 분쟁의 상처가 가장 깊은 시리아는 최악의 상황이다. 인구의 10%를 차지하던 신자 150만 명이 최근 10년 새 30만 명으로 줄었다. 시리아 북동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본거지가 됐다. 그곳에 남은 신자들은 박해와 살해 위협 속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은 지난 3월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 “전쟁 기간에 그리스도인의 절반 이상, 아마도 3분의 2가 시리아를 떠났을 것”이라며 “이는 동방의 자치(sui iuris) 교회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난 시리아가 “망각의 운명에 접어들었다”고 통탄하면서 “희망이 사라지지 않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그리스도인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신약의 장대한 역사가 펼쳐진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도인은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 학교와 직장에서 소외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중동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인이 다수인 레바논의 그리스도인은 2년 전 그리스도인 밀집지역을 강타한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고 이후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엑소더스(대량 이주)’가 멈추지 않으면 이 명성은 빛바랜 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리아ㆍ이라크ㆍ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들의 목표가 ‘그리스도인 박멸’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중동교회협의회(MECC)는 11월 28일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땅에 충실하고, 이주의 유혹을 경계하라”고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데다 언제 또 지하디즘(이슬람 근본주의 무력 투쟁)이 활개칠지 몰라 불안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호소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3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이라크 사목 방문을 강행한 이유는 중동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라져가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교황은 요즘도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자주 요청한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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