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4) 스크린의 ‘재미’에서 미사의 ‘의미’로.

참 빛 사랑 2018. 5. 13. 20:19




“미사가 정말 지루해요. 의무라 어쩔 수 없이 참여하지만 정말 힘들어요.” 아이가 한 말이 아니다. 생각 없는 건달이나 한량이 쉽게 뱉은 말도 아니다. 학문을 연구하며 열정을 쏟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 대학교수가 한숨 쉬며 한 말이다. 그런데 명색이 수도자인 내 입에서도 “그러겠네요. 나도 습관적으로 미사 드릴 때가 많아요” 하고 부끄러운 고백이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빠르고 단편적이고 감각적인 스크린 세상에 빠져 사는 자신에게 미사 참여는 커다란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한동안 신앙인으로 사는 삶의 자세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이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다가 다시 나에게 주저하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요. 신부님 강론이라도 좀 재미가 있었으면…” 하고 멋쩍은 듯 뒷말을 삼킨 채 떠났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례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의미를 찾는 데는 더디고, 재미를 쫓는 데는 매우 빠르다. 현실은 지루하고 화면은 흥미롭다. 집에 돌아오면 모두가 ‘셀프 감금 상태’다. 가까이 있는 가족과의 대화보다 분주하고 흥미로운 스크린 세상과 소통하기에 더 바쁘다. 스크린은 잠깐 즐기는 도구가 아닌 세상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늦게까지 쉴 새 없이 짧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스크린 놀이에 빠져 사니 말이다. 이렇게 스크린의 재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멈춰 느리게 성찰해야 하는 미사와 기도가 지루하고 심심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재미없으면 집중하지 못하고 채널을 돌리듯 쉽게 다른 생각으로 관심의 대상을 바꾸려 한다. 누군가는 ‘미사를 재미로 참여하나? 참으로 불경스럽다’며 미사 전례의 의미를 강조하며 설득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 사람에게 ‘재미’란 단순히 즐기는 차원 이상의 중요한 의미이며 메시지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지루하고 힘든 미사라도 적극적 의미 해석으로 찾은 의미 체험이 더 높은 차원의 재미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은 읽을 수 있지만 읽지 않는 문맹인”이라 했다. 글은 읽지만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문맹이라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현대의 문맹인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고 정보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크린에서 쏟아내는 과잉정보를 오락으로 즐기면서 진지하게 해석하지 않는 사람 역시 문맹인일 수밖에 없다.

워싱턴대학 신경과학자들 연구팀에 의하면 의미 없이 사물을 보았을 때 뇌는 후두엽 시각 영역 중 일부만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것이라도 의미 있게 해석하게 되면 뇌의 새로운 경로가 열린다는 것이다. 유의미하게 읽어내는 순간, 뇌 신경세포의 활동은 두세 배까지 증가한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지각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정신세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다. 반면에 그저 보고 듣기만 하고 마음속 의미 체계로 들여오지 않는다면 어떠한 삶의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스크린을 눈으로만 보게 되면 정신은 스러지고 감각적인 몸의 욕구만이 넘쳐 우리의 영혼이 지배당한다. 이는 뇌에서 반응조차 하지 않는 무의미한 행위에 빠져 있는 상태다. 니체는 “사실이란 것은 없다. 오직 해석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읽고 해석하는 세상이 사실이고 진실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나서 전율하고 감동했거나, 미사 참여 후 밀려오는 평화로움에 푹 젖었다면 이 느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나의 지각을 통한 적극적 의미 해석의 단계를 거친 것이다. 평소 훈련이 잘된 사람은 이런 경험을 자주 할 수도 있다. 오늘부터라도 나는 미사에 참여하면서 조금 더 말씀에 경청하고 적극적인 의미 해석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그리하여 스크린의 재미보다 훨씬 더 깊은 영적 차원의 의미를 찾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SNS 세상을 위한 평화의 기도

주여 저희를 사이버 세상에서 평화의 도구 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사이버 세상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네티즌들에게 용서를
분열이 있는 SNS 세상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디지털 세상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과잉정보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뉴스를 희망으로
어두움이 있는 디지털에 빛을
슬픔이 있는 사이버 대지 위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문자로 위로받기보다는 말로 위로하고
접속으로 이해받기보다는 접촉으로 이해하며
카톡으로 사랑받기보다는 내어주며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행동으로 내어줌으로써 받고
진심으로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를 사이버 세상에서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아멘!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