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13)어머니도 자녀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다!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지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도 난 어머니를 보내드리지 못한 것 같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리고, 꿈속에도 자주 나타나니 말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에게 그저 받기만 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 어머니에게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전화 너머 전해지던 언니들의 흐느낌과 울음소리. “엄마가 폐암 말기래.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그때의 고통과 절망이란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큰 충격이고 슬픔이었다.
나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을 잘 보내고 싶어 한 달 특별 휴가를 받았었다. ‘어떻게 엄마와 시간을 보낼까?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드릴까?’ 아득하고 착잡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엄마를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드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와 함께 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내가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그저 옆에서 엄마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만 해줬어도 됐는데 말이다.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그 이상의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어머니와 나는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방영되는 내 강의를 함께 보게 됐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마침 그 강의에서 내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돈 보스코 성인의 말을 인용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라”고 말하며, “어머니도 자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나는 계획에도 없던 말을 방송 중에 불쑥 했다. “저희 어머니가 지금 많이 아픕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요즘 엄마가 아파서 가족들이 더 자주 찾아오고 더 애틋하게 관심을 보였지요. 그랬더니 엄마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너희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라는 그 말씀이 너무 슬펐어요. 그런데 우리 가족은 정말로 엄마를 많이 사랑하거든요”라고 말하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도 쏟아졌었다.
그때 카메라가 나의 촉촉한 눈가를 클로즈업했고, 그 장면을 보던 나는 가슴이 조여 와서 더는 방송을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머니와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숨을 죽이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그때 어머니는 텔레비전 바로 앞에 앉으셨고 나는 뒤쪽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미동도 보이지 않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노라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딸이 더 힘들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움직이지도 않고 눈물을 참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를 위해 올라오는 슬픔을 꾹꾹 누르고 말았다.
그런데 엄마를 보내고 나니 엄마에게 슬프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된다. 오히려 그냥 껴안고 울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엄마를 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이 슬프고 아프다고.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저 그렇게 맘껏 내 마음을 다 보여주고 어머니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었어야 했다. 분명 나는 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 ‘슬프다’, ‘그립다’, ‘보고 싶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바라보며 온 존재로 말하지 못했을까. 이 아름다운 말들을 왜 선물로 드리지 못했을까.
어머니가 몹시도 그리운 5월이다. 이제 더는 어머니의 가슴에 꽃을 달아드릴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에 아주 잠시라도 어머니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꽃을 달아드릴까? 선물을 드릴까? 옷을 해드릴까?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까? 아니다. 나는 오로지 단 하나,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따뜻한 눈빛과 표정으로 뜨거운 포옹과 웃음으로.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성찰하기
1. 부모님은 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낄까요? 사랑한다는 말, 멋지게 해봐요. 표현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요? 그러나 알고 있어도 가슴 깊이 따뜻하고 충만하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2. 이렇게 해요. 우선은 이 세상에 오로지 부모님과 나만 존재하고 있는 장소면 좋겠어요.
3. 그리고 행복한 표정과 따뜻한 눈빛으로 부모님을 바라보아요.
4. 나의 온 존재로 천천히 정성껏 말해요. “사랑합니다!”라고. 그리고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뜨겁게 포옹해드려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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