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시절, 한국인인 나와 미국 사람들과의 소통은 참으로 고독한 싸움이었다. 일상대화나 토의 그리고 불편함에서 오는 논쟁까지. 그들의 언어로 내 정서를 표현해야 했다. 그렇게 언어와 문화의 벽으로 인해 엉켜진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은 외롭고 고독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 때문에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한 번은 정말 얄미운 교수와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당한 것 같은 불쾌함을 삭이지 못해 성당에 앉아 “주님, 제가 우리말로 했다면 그렇게 억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고요”라며 엄청나게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펜을 들고 그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마구 써내려갔다. 그렇게 4쪽에 걸쳐 빼곡히 일기를 써내려가는데 어느새 화가 누그러지면서 점점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로 향하던 온갖 판단과 불평이 어느 사이 나의 내면을 향한 성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가 단순히 하루를 기록하는 행위 같지만, 사실 펜을 드는 순간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재정비하면서 깊은 성찰의 문을 연다. 일순간 나의 몸과 정신은 침묵에 들어간다. 나 홀로 버틸 수 있는 고독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소란했던 외부 환경을 잠재우고 흥분된 감정을 가라앉혀 준다. 단 한 줄이라도 나만의 소중한 이야기를 일기장에 남기다 보면 분주하고 산만했던 마음이 정리된다. 특히 고통스러울 때는 그 일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한 정서가 깊은 깨달음으로 옮겨진다.
심리학자인 탈 벤 샤하르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을 일기로 쓰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불안 증세가 높아지지만 점점 위로와 해방감을 얻게 되면서 낙관적으로 변한다고 전문가들의 실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일기 쓰기는 무엇보다 ‘화’를 달래주고 하느님께 다가가는 성화의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다. 앞에 대상이 있어 화를 내거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방치하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마도 홀로 버티고 머물 줄 아는 자만이 일기를 쓸 수 있는지도 모른다. 흙탕물 속에 감춰진 지질하고 못난 나의 민낯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화’를 부추긴 열등감과 죄책감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과도 그대로 마주한다. 펜을 들고 일기를 쓰는 자는 거짓을 말할 수가 없다. 일기 쓰기는 나의 영혼과의 대화이며 하느님께 다가서는 영적 노트이기에 더욱 그렇다.
펜으로만 글을 써야 할까? 물론 컴퓨터로 일기를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컴퓨터는 왠지 누군가 들여다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판 위에 올라간 손은 바로 무언가 써야 할 것 같은 조급함으로 변하고, 인내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나는 컴퓨터로 글을 쓰기가 훨씬 더 쉽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일기만큼은 컴퓨터가 아닌 종이 위에 써야 할 것 같다. 나 홀로 하얀 종이 위에 나만의 펜을 들고 있으면 시계 침이 멈춘 것 같고 그 공간은 나만의 비밀의 방이 된다. 저절로 내 영혼은 침묵하게 되고 그 순간 오로지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만이 나와 함께할 뿐이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일기를 쓰자. 나의 시끄러운 감정과 생각이 소리 없는 고요한 기도가 된다. 시간전례(성무일도)가 거룩한 말씀으로 주님께 드리는 찬미라면 일기 쓰기는 고단했던 하루를 보살피고 수선하여 주님께 돌려드리는 선물이며 나만의 신앙고백이다. 죽을 것 같은 순간에 주님 앞에 한탄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께 의탁하는 다윗의 마음으로 나만의 작은 시편을 읊조리게 된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성찰하기
1. 매일 일기 쓰기가 어렵다면 한 줄이라도 써요. 그것도 힘들면 몹시 화가 나고 고통스러울 때만이라도 써요. 처음에는 불안하겠지만, 자꾸 쓰다 보면 평온해질 겁니다.
2. 아침 묵상할 때 묵상 노트를 쓴다거나 잠자기 전에 성찰 노트를 쓰는 것도 좋아요. 바쁠 때도 막상 펜을 들면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3. 문법이나 형식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하듯이 쓰면 됩니다. ‘말하듯 읽을 수 있는 글’이 아주 좋은 글이라고 해요.
4. 기억해요. 일기 쓰기는 무엇보다 나의 영혼과 하느님을 만나는 행복한 비밀의 방이라는 것을.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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