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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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국제)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20. 제5장 열매 맺는 사랑 ② (178~186항)

참 빛 사랑 2016. 11. 22. 11:50

교황이 전하는 행복한 가정의 비결



결실의 확장(178~184항)


부부 사랑의 열매 혹은 결실이 자녀라고 했다. 하지만 자녀가 없어도 부부는 여러 형태로 사랑의 결실을 맺고 넓혀갈 수 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별히 세 가지 측면을 언급한다. 입양, 대가족,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다.

자녀가 없다는 사실이 부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혼인이 단지 자녀 출산만을 위해 제정된 것은 아니다. “간절히 바라는 자녀가 없더라도 혼인은 온 생애의 공동생활과 친교로서 지속되며, 그 가치와 불가해소성도 보존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50항).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아가 “모성은 오로지 생물학적 실재만이 아니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178항)는 점을 주목한다.

교황은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입양을 권고하면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179항)이라고 말한다. 입양은 가족이 없는 아이에게 가정을 선물하는 사랑의 행위다. 또 아무런 조건 없이 아이를 자녀로 받아들이는 부부는 이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일정 기간 아이를 맡아 키우는 가정 위탁도 교황은 권고한다. 입양이나 가정 위탁 모두, 자녀 양육의 중요한 측면을 표현한다. 친자식이든, 입양 자녀이든, 가정 위탁 자녀이든 간에 모든 자녀는 가정에 받아들여지고 가족에게서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사회에 일깨워 주는 것이다.

대가족은 부부 사랑의 결실을 넓히는 또 다른 체험의 장이 된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사랑과 사랑의 결실을 세상 속에서 펼쳐 나가야 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한다. 가정은 사회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다. 사람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가정은 사회 통합의 축이 되고 접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황은 이렇게 언명한다. “부부는 그들의 사회적 의무를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이로써 그들의 애정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으로 흘러넘칩니다”(181항).

그런데 잘난 체하는 가정, 자기네 집안은 특별하다고 여기는 가정들이 있다. 교황은 그런 가정들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면서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이웃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간 나자렛 성가정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나누는 모범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정은 이웃에게서는 물론이고 친척들로부터도 배척을 받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가정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저마다 동료 인간을 형제자매로 보도록 도와주는 일을 각 가정에 맡기셨다며 가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열려 있는 가정, 사랑으로 보살피는 가정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리를 주고, 더 못한 이들과 우정을 쌓는다. 이런 가정들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내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말씀을 새기며 실천한다. 바로 여기에 “행복한 가정이 되는 비결이 있다”(183항)고 교황은 말한다.

그래서 교황은 사회로 확대되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정들은 그들의 말로만이 아니라 증거로써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은 신앙을 전수하고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일깨우며 복음의 아름다움과 복음적의 삶의 방식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교적 혼인은 이리하여 형제애의 증거, 사회적 관심, 소외된 이들의 대변, 그리고 빛나는 신앙과 행동하는 희망으로 사회를 활기차게 합니다. 그들의 결실은 퍼져 나가고 무수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사회에 현존하게 합니다”(184항).



몸의 식별(185~186항)

하지만 부끄럽게도 신자들 사이에서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의 신자 공동체에서 벌어진 상황을 예로 들면서(1코린 11,17-34 참조), 이 문제를 직시하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코린토 교회에서는 성찬례를 마치고 식사를 할 때 부유한 사람들은 자기네가 갖고 온 것을 먹지만 가난한 이들은 굶주려 그냥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성찬례에서 빵을 함께 나눠 먹고 잔을 나눠 마시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한 몸의 지체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빵을 나눠 먹으면서도 차별하고 분리시킴으로써 한 몸에 상처를 입히는 현상은 코린토 교회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제를 사회로 확대한다. “성사의 신비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4항)는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에게 눈을 감거나, 다양한 형태의 구분과 경멸과 불평등에 동의할 때에 자격없이 성체를 모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186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