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 대학생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몇 년간 성당을 느슨하게 다니던 내가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다시 청년 복사를 하겠다며 신부님을 만나뵈었다. 그런데 신부님은 클래식 음악 작곡을 전공하는 나에게 청년 성가대 지휘는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조심스러웠지만, 청년 공동체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신부님의 뜻에 따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주일마다 오후 6시면 성가대에서, 밤 9시에는 복사 친구와 함께 제대 위에서 두 번씩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그동안 빠진 미사를 이렇게나마 채우면 어떠냐고 내 나름대로 주님께 통보한 셈이다.
지휘를 배운 것도 아닌데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기존의 성가대를 이끌게 된 첫 시작은 다소 어색하고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여러모로 부족했던 막내인 나를 항상 반갑게 맞이해주고 잘 따르던 그들과 매주 즐겁게 화음을 쌓다 보니 어느새 3년이 넘도록 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연습 중에 신부님이 자주 보이던 청년을 데리고 오셨다. 어수룩한 외모에 숫기가 없는 건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그가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신부님을 찾아간 모양이다. 한 명의 목소리가 소중했던 우리는 기쁘게 맞았다. 그런데 아뿔싸, 그 형제는 음치였다. 음감과 리듬감이 없는 데다 목소리까지 커서 성가대 전체의 울림이 흔들릴 정도였다.
성실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노래하는 그의 얼굴,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해 심란해하는 다른 이들의 표정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음악적 완성도보다 신앙이 우선이니 꼭 함께하라고 당부하셨다.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30분 더 일찍 모여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다행히 조금씩 발전은 있었지만, 본디 황홀했던 우리 성가대의 울림에는 미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성가대에서 활동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를 맞닥뜨릴까 싶어서였다. 신부님 말씀대로 청년 성가대가 전문 합창단도 아니고, 오히려 완벽을 추구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그것도 성당에서는 더욱 일어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음악은 우선적으로 듣기 좋아야 한다. 그 형제를 제외한 모두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각자 다른 시간과 선택이 필요했다.
몇 달 후 나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면 평범하게 친구들과 미사에 참여했고, 위층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감상하며 슬쩍 쳐다보곤 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때 녹음해두었던 노래를 듣고, 또 최근 성가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그리고 즐거웠던 추억과 함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지, 혹은 그 상황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당시에는 큰 문제라고 여기던 것이 생각보다 미미한 차이였다. 오히려 그 완벽하지 않은 울림이 더 포괄적인 의미로 아름다울 수 있었다.
신부님 덕분에 그때의 우리가 후회 없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 같아 다행이다. 요즘의 나는 어떨까? 분명히 비슷한 문제를 다른 상황에서도 겪었을 텐데, 완성도나 목적 달성을 위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하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작곡가 손일훈 마르첼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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