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일 오후, 온천 다녀오는 상쾌한 길 위에서, 함께 하는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형제님은 중국 선교 갔다가 왜 돌아오셨어요?”
“아파서 왔어. 치료차 안식년 보내고는 그대로 한국에 있게 됐네. 중국 선교 마음 있어?”
제가 궁금했던 것은 다른 데 있었죠.
“그런 건 아니고요. 형제님은 삶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추구하고, 또 어떻게 접으시는가 궁금해서요. 저는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잖아요. 제 삶의 방향이 명확했었죠. 졸업이라는 단기 목표가 절 불안하게도 만들고, 안달 나게도 했지만, 매일의 삶을 단순하게 해주었어요. 이젠 그 목표에 도달해 신학생을 양성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방향이 잘 안 잡히네요. 할 일은 참 많아요. 감사하게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도 많고요. 하지만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또 다른 굵직한 단기 목표를 설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저런 성취가 없이도 제 삶이 의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뭐랄까, 산 정상에 섰는데 다 이뤘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이젠 어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 넘어가는데 또 다른 산을 오를 순 없잖아요.”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요? 고대의 윤리학은 삶의 목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타고 난 본성 안에 그 끝, 종착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했죠. 어떤 본성이든 좋은 것으로 이끌리잖아요. 본성의 완성이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이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했죠.
중세의 그리스도교 윤리학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목적지를 하느님 혹은 그분과의 합일로 여겼고, 그 종착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그곳에 이르는 여정 자체에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타고난 본성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나의 자유이고, 나의 신앙적 선택에 따라 그 본성의 완성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인생이 마치 어디로 가든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는 에베레스트 등반 같은 것이 아니라, 그 목적지에 이르기까지의 자유로운 선택들,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들, 또 우리가 맺는 관계들 그 자체라는 것이죠.
그 후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된 근대의 윤리학은 중세가 발견한 자유를 주어진 본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저 멀리 있는 목적지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기에 이릅니다. 칸트는 말하기를,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의 의지로 하는 올바른 선택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질문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시나요? 저 멀리 있는 나의 목표? 은총과 노력의 여정? 아니면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동?
저는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인생의 의미는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된 것 같네요. 머리로는 어떤 성취를 위한 목표를 향해가지 않더라도 나의 하루하루는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 가끔 뒤돌아볼 때 나름의 성취에 흐뭇해하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지금 내 삶의 충분한 의미를 위해서 삶의 방향성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꼭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진리를 향해 가잖아. 함께 살아가는 형제들이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같아. 함께 생활하고 기도하고 또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하면서 같이 그 진리를 향해 가는 거지. 각자 삶의 모습은 많이 달라도 말이야. 너무 가깝게 부딪히면서 서로를 간섭하는 삶을 원하지는 않지만, 함께 가야지. 함께 가다 보면 각자의 길이 보이지 않겠니?” 함께 걷는 길 위에서 형제가 따뜻하게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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