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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이 넘은 농인(청각장애인)인 제가 사제가 될 수 없을 거로 생각해 낙담한 적도 있었죠. 그래도 14년 만에 마침내 사제품을 받았네요. 긴 여정 동안 제 곁에 함께 계시며 기다려주고 이끌어주신 하느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7일 ‘한국 교회 두 번째 농인 사제’가 된 서울대교구 김동준 새 사제는 “교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문화가 인간적 배려와 공감의 문화로 나아가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가 각자 고유한 아픔과 어려움을 지닌 채 세상 기준에 배척당하고 차별을 겪는다. 모두 하느님께 사랑받는 거룩한 아들딸들임을 사제로서 계속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후 3개월쯤 세례를 받은 김 신부는 어릴 적 청력을 잃고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독실한 어머니의 영향이었다. 5년 동안 복사도 했지만, 청소년 때 냉담에 빠지기도 했다. 김 신부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찾지 않았던 제게 가장 큰 원인이 있었지만, 강론을 포함한 모든 전례 안에서 어떠한 ‘소리’도 들을 수 없어 미사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던 때였다”고 회고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농인 신자 소개로 수어 통역을 하는 성당을 알게 됐다. 김 신부는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그 미사에 참여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난생 처음 신부님 강론이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 알게 된 순간이었죠. 수어 통역 봉사자가 미사 전례의 모든 음성을 통역해준 덕분이었어요. 사제 강론을 이해하고 묵상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 영적 위안은 고단한 직장생활을 하던 제게 하느님을 향하도록 해준 자양분이자 이정표가 됐죠.”
김 신부는 점차 미사 전례의 맛을 느끼게 됐다. 그의 가슴 속에서 “농인 신자들이 통역이 아니라 ‘수어 원어민’ 사제를 통해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갈망이 피어올랐다. 이는 곧 사제성소로 이어졌다.
이후 수도회에 입회했다가 11년 만에 떠나게 된 김 신부는 다시 희망을 찾아 서울대교구 이적을 타진했고, 기다림 끝에 대신학교 6학년에 편입했다. 마침 수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신학생이 2명이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한 교수는 그를 위해 일대일 수업을 해줬다.
그럼에도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홀로 농인이라는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신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며 위로를 얻었다. 인간이었던 예수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이해받지 못했고, 외로웠기 때문이다. 가장 힘이 돼준 성경 구절은 사제 수품 성구인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시편 118,22)였다.
김 신부는 “장애인이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만 여겨진다면 돌봄과 도움만 받는 존재로 계속 인식될 것”이라며 “장애인 역시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존재이며, 주님 앞에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형제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함께 건설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했다.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하느님의 은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 풍요롭게 쓰이길 바랍니다. 일치의 교회 안에서 각자의 다양성이 더 아름답게 빛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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