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함께하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10월 30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사업’에 대한 불법 브로커 개입을 반대했다. 사진=외노협
필리핀에서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사업’을 통해 한국에 온 A씨는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해도 월급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약 190만 원이었고, 이마저도 매달 75만 원씩 일자리 중개 수수료로 불법 브로커에게 자동이체됐다.법무부가 운영하는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은 농어업 인력 부족을 해결하고자 단기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들이 입국하는 과정에 불법 브로커가 개입, 여권 압류·임금 착취 등 ‘인신매매’ 피해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2015년 가입한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란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행위만이 아닌 착취를 목적으로 불법적인 수단을 통해 사람을 모집, 이동시키는 행위도 포함한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5일 처음으로 계절근로자제 관련 인신매매 피해를 인정하고, 국무총리 등에게 △계절근로자제 운영의 주무부처 조정 △계절근로자 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업무협약 체결 주체를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국가 또는 광역지자체 단위로 상향 △계절근로자 전담기관 설립 같은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가 계절근로자제 인신매매 피해에 대한 진정을 접수한 뒤 실태조사한 결과, A씨가 일한 기초지자체에서만 임금착취 49건, 통장압수 7건, 근무처 변경허가 위반 1건, 임금체납 1건, 폭행(폭언) 1건이 보고됐다. 계절근로자가 이같은 처우를 견디지 못해 근무지를 이탈하면 불법 브로커는 현상금까지 걸고 수배에 나섰다. 브로커들은 계절근로자를 감독할 권한을 부여받은 이들도 아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함께하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10월 30일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무부의 방관 속에 계절근로자제 시행 과정에서 현대판 추노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며 “법무부는 인신매매 피해가 발생한 지자체 등에 대한 진상 조사와 피해자 구제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계절근로자 배정 인원은 2021년 7340명에서 올해 4만 9286명으로 6.5배 넘게 늘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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