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랜드 (unplaned)
우리는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 사고, 질병 등 갑자기 찾아온 일들은 불행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불행을 가장한 축복일 수 있다. 나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주부이다. 한 번의 낙태와 한 번의 자궁 외 임신으로 인한 나팔관 절제, 그 후 두 아이의 출산, 또 한 아이의 입양.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나의 이야기는 「언플랜드」의 애비 존슨과 아주 닮았다.
“정말 쉬워. 낙태한 친구들이 있어. 별거 아니야. 약속 한 번만 잡으면 문제는 해결돼.”(「언플랜드」 35쪽)
그 날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던 20대 초중반의 아가씨들 사이에서 나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곳은 낙태를 할 수 있는 산부인과였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혼전 임신이라는 뜻밖의 사실과 마주해야만 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었고 나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임신은 마치 내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암벽처럼 느껴졌다. 두려움과 혼돈. 하지만 나는 두 가지 마음 안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내가 낙태를 하다니 그럴 수 없어. 아니야 이루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은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없어.”
진료대기실에 앉아 있던 중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로 들어간 뒤 초음파를 통해 임신을 확인했고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현재의 남편인 남자친구는 지금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며칠 뒤 나는 그 산부인과를 다시 찾았고 소파수술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날의 공기 흐름, 냄새, 조명, 날씨를 기억한다. 그날의 기억은 조각칼로 새긴 것처럼 가슴에 선명히 남아있다. 어둡고 칙칙한 냄새가 나는 기억. 수술실에서 나와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는 울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그 경험을 상자 안에 넣어 못질하여 닫아버리고 내 영혼의 구석에 있는 선반에 밀어 넣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듯이 행동했다.”(「언플랜드」38쪽)
아무 일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남들도 하는 거라고. 그러니 대수로운 일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자신을 속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자궁 외 임신으로 왼쪽 나팔관 절제를 해 한 아이를 다시 떠나 보냈지만 감사하게도 두 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나는 출산 후, 영혼 구석에 밀어 넣었던 낙태의 사실과 자주 마주해야만 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일은 수시로 내 마음을 후비고 다니며, 불쑥불쑥 나타나 마음속을 유영하고 돌아다녔다. 이미 지난 일이었지만 현재의 일인 것처럼 꿈을 꾸었다. “나는 살인자야. 하느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실까? 살아서 숨 쉬던 그 아기를 어둠 속으로 떠나보냈어.”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고해성사를 통해 몇 번이고 고해했지만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런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15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예수님은 내 잘못을 이미 용서하셨지만 용서하지 못한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엄마! 내가 엄마한테 잘못해서 나 미워하지?” 아이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엄마들은 “아니. 왜 너를 미워해? 네 실수는 미워할 수 있지만 너의 존재는 절대 미워하지 않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단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을까? 내 잘못으로 인해 나를 미워하실까? 아니다. 심지어 주님께서는 몸조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린 나를, 누구에게도 임신과 소파수술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홀로 울부짖으며 잠들던 나를, 죄책감으로 15년 이상을 힘들어했던 나를 주님께서는 가여워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울어버렸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주님은 사랑이고 자비이셨다.
“애비, 바로 그 순간 저는 당신이 내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언플랜드」 203쪽)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의 고됨을 절실히 느꼈던 내가 세 자녀의 엄마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체력도 약하고 야무지게 살림을 하지도 못하기에 두 자녀만으로도 버거웠다. 그런데 입양이라니. 제정신인가? 그런데 온 가족이 입양기관에 앉아 입양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그것은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철저한 계획.
그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모님. 제가 너무나 사랑이 부족해서 아이 사랑의 그릇을 채워줄 수가 없어요. 왜냐면 내가 가진 사랑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성모님 사랑 한 방울만 저에게 주세요. 한 방울만요.” 그런 기도를 했다.
계속해서 사랑을 요구하는 둘째 아이를 충족시키기에 내 사랑은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 기도는 절실했다. 하지만 그 기도의 응답이 입양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 기도를 하고 한 두 달 뒤쯤 나는 강렬한 마음의 흐름에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끊임없이 생명을 거부해왔던 나는 생명이신 하느님을 거부한 것이라는 생각에 힘들었다. 그러니 생명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사죄해야 한다 생각했다. 입양은 낙태에 대한 보속이며 생명을 받아들이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을 아이들과 남편을 설득한 끝에 온 가족이 그 뜻을 받아들인 날 입양기관에서 서류 작성을 하고 있었다.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던 남편을 몇 달이나 설득했는데 막상 서류를 작성하려니 오히려 내가 무척이나 떨렸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야?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주님 왜 저인가요?
아이는 우리 집에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29개월에 접어들고 있는 여자아이. 아이는 요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저 쉬했어요. 배고파요. 사랑해요.” 그 조그만 입에서 말을 한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를 배워 불러주기도 한다. 우리 가족은 이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행여나 다칠세라 조마조마한다. 우리 집의 사랑스러운 막내이다.
둘째 아이는 막내를 살뜰히 챙긴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동생이란다. 동생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뽀뽀해달라며 졸라대는 언니. 동생이 아프면 같이 울어주고 업어준다. 자신과 7살 차이 나는 동생을 엄마처럼 챙겨준다.
‘아이가 우리 집에 입양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존재해줘서 엄마는 행복해. 고마워!” 아이는 귀찮다는 듯 “나도 사랑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우리 집에 온 날은 2018년 8월 24일이었다. 아기는 100일이 조금 넘은 상태였다. 그러나 몸무게는 5kg이 되지 않았다. 보통의 아기들은 100일 정도면 최소 6kg 이상이니 작아도 너무 작은 편이었다. 내 팔길이 정도 남짓 되는 아기는 내가 4번째 엄마였다. 세상에 나와주게 해준 생모, 두 명의 위탁모, 그리고 나.
태어난 지 겨우 100일인데 내가 4번째 엄마라니. 집에 온 첫날은 잠도 자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늦은 밤 겨우 잠들었는데 울음 끝이 남아 계속 울먹이며 잠들었다. 계속 우는 아이 옆을 지키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엄마가 이제 너를 지켜줄게. 걱정마렴.”
하지만 아기는 돌 무렵까지도 온몸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 아기 마사지를 하기 위해 다리를 벌리면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다리가 양쪽으로 벌려지지 않았다. 말은 못하지만, 아기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던 거 같다. 두 돌이 넘어서야 온몸에 긴장을 풀었다. 오늘도 아기는 나를 향해 웃어주며 말해준다. “엄마 사랑해.”
입양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속죄’였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달랐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많은 기쁨과 위안을 받는다. 소소한 행복에 웃음 지을 수 있다. 이제야 나는 깨닫는다. 이것은 속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일이 아니었다. 자비로운 주님께서 거저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그것이 하느님의 계획이었다.
우리 가족은 매일 밤 생모와 생부를 위한 기도를 한다. 그녀의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모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지만 우리 막내딸을 위한 것이다. 생모의 안위가 우리 막내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명의 아이와 입양으로 인연을 맺었고 생모와 생부, 그리고 그 조상들까지도 한가족이 되었다. 매일 밤 기도 속에서 생모를 부르고 그녀의 아픔을 만진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가장 귀한 딸을 태어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한다.
“나는 그들을 믿었다. 8년 동안 울타리 너머로 나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그들은 나를 위해서 계속 곁에 있어 주었다.” (「언플랜드」 137쪽)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의 아픔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우 크다. 나의 경우는 어둠이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잠식해왔다. 세상은 말한다. 조심하지 그랬어. 낙태? 다들 하잖아, 쉬워 잠깐 누워만 있으면 된다고. 맞다. 상황은 빠르고 쉽게 정리된다. 그러나 정신적인 후폭풍은 몇십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도 지워도 씻기지 않는다.
우리 막내딸에게 “버려진 아이”라는 단어를 쓰는 어른들이 종종 계신다. 과연 버려졌을까? 나는 우리 막내딸을 지켜내기 위한 생모의 뼈아픈 노력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우리나라 입양법상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는 미혼모인 자신의 호적에 아기를 올려야만 입양을 보낼 수 있다. 생부도 사라져버린 마당에 미혼모인 그녀는 자신의 온 인생을 걸고 자신의 호적에 아이의 이름을 올렸다. “망쳐버린 내 인생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제발 좋은 곳에 가서 잘 살아라” 하며 눈물로 보냈을 것이다. 그녀는 너무나 훌륭한 엄마이자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잘 살기 바란다.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훌륭한 남편을 만나 사랑받으며 자신을 위해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금도 많은 10대나 20대 여성들이 낙태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 위에서 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긴 그들의 마음에는 결코 메꿀 수 없는 구멍이 생길 것이다.
자신의 축복받지 못한 임신을 아무에게 말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아파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용기를 내! 넌 이제 엄마야.”
만약 우리 막내딸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오밀조밀한 작고 귀여운 그 아이를 몰랐다면 우리 가족의 삶은 어땠을까? 생모가 생명을 포기하고 낙태를 선택했다면. 오늘도 생명을 선택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다. 키우지 않는다고 엄마가 아닌 건 아니다. 생명을 택해 아이의 행복을 빌며 태어나게 한 엄마도 엄마다. 용기 있는 엄마. 출산한 후 본인이 기를 수도 있고, 입양을 보낼 수도 있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생명을 선택한 그녀는 위대한 엄마다. 그러니 제발 생명을 선택하길 바란다. 우리 가족은 오늘도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낙태의 위험에 처한 아기를 구해주세요. 그들의 엄마가 생명을 선택하게 해주세요.”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생명을 선택한다면 그 계획은 하느님의 선물로 다가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선물로
최미르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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