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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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출판

“작가의 삶·활동한 시대 알고 가면 미술 더 재밌죠”

참 빛 사랑 2024. 12. 14. 13:28
 


 
지난해 문을 연 토커바웃아트 사무실에서 만난 김찬용 도슨트.


재능기부하다 흥미·보람 느껴
17년간 200여 곳서 전시 해설


강연으로 더 많이 벌지만
풍부한 정보 접할 수 있는
도슨트로 사는 게 꿈


유럽 미술관·건축물 둘러보는
아트 투어도 주 업무 중 하나
갈 때마다 성당 꼭 찾아가



“어머니가 주신 묵주였는데, 지금은 착용하지 않아요. 10년 넘게 하고 다녔더니 해졌는지 끊어져버렸어요. 성당에도 안 나가면서 괜히 불안하고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고, 떨어진 건 잘 모아서 간직하고 계속 기도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언젠가 묵주 팔찌를 한 도슨트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바로 김찬용(비오)씨. 이제 막 40대에 들어섰지만 햇수로 17년째 전시 현장에서 활동하며 탄탄히 이름을 알렸고, 특히 국내에서 전업 도슨트의 길을 열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수시로 기회를 엿보던 기자는 최근 개막한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해설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도슨트(Docent)는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해요. 영국에서 생긴 미술관법의 관련 제도가 일본을 거쳐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로 흡수된 건데요. 고용된 직원은 아니고 보통 재능기부·자원봉사 형태로 유지된 미술관의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게 하려고 ‘전시 해설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여느 미술학도처럼 직접 그림을 그리는 일부터 큐레이팅, 작품을 판매하는 일까지 여러 진로를 탐색했다. 그러다 3년 정도 재능기부로 참여한 전시 해설에서 흥미와 보람을 느꼈고, 도슨트를 ‘업’으로 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주요 전시마다 이력서를 보내는가 하면, 재능기부가 아닌 하나의 업무로 인정해 달라며 인건비도 요청했다.

“실패해도 ‘젊은 날 재밌었다’ 이렇게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당시엔 돈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밀고 나갔어요. 10년 정도는 거의 수입이 없었어요. 30대 들어서면서는 해마다 고민했죠. 다행히 언젠가부터 전시 기획사에서 먼저 연락을 주시고 업계 상황도 달라지면서 지금은 미술 해설만으로도 먹고사는 건 가능해져서 참 감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200여 곳에서 전시 해설을 담당한 것과 그 사이 서서히 ‘도슨트’를 하나의 직업으로 만든 것은 그의 자부심이자 든든한 무기다. 지난해에는 ‘토커바웃아트’라는 문화 교육 플랫폼도 만들었다. 미술 해설을 좋아하고 도슨트로 생존하고 싶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업체를 만든 셈이다. 사실상 전시 현장보다는 각종 강연을 통해 얻는 수익이 크지만 도슨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꿈의 본질, 그 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강연자보다는 도슨트로 사는 게 꿈이에요. 특히 요즘은 다양한 분이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미술 해설을 하시는데, 도슨트로 고용돼 일할 때 훨씬 깊고 풍부한 정보를 접할 수 있거든요. 수많은 논문을 읽고 자료를 공부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번 반 고흐 전시만 봐도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제작연도부터 가치 등 끊임없이 작품을 분석하고 연구하는데, 예를 들어 처음에는 뉘넨에서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이 나중에 파리 시기 작품으로 밝혀지기도 했어요.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정보도 많기 때문에 도슨트로 현장에 있을 때 가장 좋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죠.”
 
김찬용 도슨트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아트 투어’다. 유럽을 중심으로 주요 미술관과 건축물을 함께 둘러보며 작품을 해설하는 것이다. 그때 잊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성당이다.

“핑계지만 전시 쪽은 주말과 휴일에 더 바쁘다 보니 주일 미사에도 거의 못 가요. 그런데 과거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힘들 때 기도를 통해 많은 위안을 얻으셨다고 해요. 깊게 기도할 때 하느님이 안아주시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 잘 극복하셨어요. 제가 묵주 팔찌를 늘 했던 것도 신앙심과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아하는 일이니 조금씩 모아서 70대에 유럽 미술관에 가보자 했는데 지금은 일로 연결돼 돈을 벌면서 주요 미술관에 다닐 수 있고, 좋은 분들 만나서 혼자라면 하지 못할 일들도 함께하고 있고요. 모두 주님의 뜻 같습니다.”

지난 2020년 가톨릭튜브 ‘황중호 신부의 고고고’에 출연해 영국 테이트 모던에 전시된 울라퍼 엘리야슨의 기상 프로젝트를 소개하는가 하면 가톨릭미술아카데미에서 강연하기도 했던 그에게 미술사의 큰 줄기인 ‘종교 미술’을 감상하는 팁에 대해 물었다.

“종교 미술도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잖아요. 중세 시대까지는 작가가 예술가로 존중받기보다 장인이나 공예인으로서 만들어내는 경우였고,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오면서는 인간 중심의 시선을 갖게 되면서 미화되는 부분도 있고, 이후에는 개인의 관점이 중요해지면서 반 고흐나 에곤 실레처럼 종교에 대해서도 예술가 자신의 믿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고요.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보실 때에도 그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이왕이면 어떤 삶을 살았고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관점을 가지고 본다면 신앙심과 함께 색다른 묘미를 발견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례력으로는 새해가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새해 바람과 계획을 들어봤다.

“지금 큰 시련 없이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거든요. 하루하루 많은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일만 가득하지 않더라도 지혜롭고 현명하게 잘 극복하고 싶고, 지금처럼 기분 좋게 부모님을 돌봐드릴 수 있는 능력이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 다리가 좀 불편하신데, 새해에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정) 대성당에 모셔 가고 싶네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