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언론인 베르나르다 로렌테와 인터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본주의의 탐욕을 질타하며 노동자 편을 드는 자신에게 일부 사람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데 대해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교황은 최근 아르헨티나 국영통신사 텔람(Tlam)과의 인터뷰 중 노동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셀프 사상 검증을 했다. 물론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람들을 비판한 뒤 “교황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웃음) 복음을 읽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말할 뿐”이라고 말했다.
“제가 사회 회칙에 쓴 내용을 언급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황은 공산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히브리 율법은 과부, 고아, 이방인을 돌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이들 세 부류의 형편을 잘 보살피면 모든 게 잘 돌아갈 겁니다.”
신앙은 정치적 이념 아니다
이런 화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교황이 즉위 첫해인 2013년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했을 때 서방의 일부 경제학자와 보수 언론은 “이분 혹시 마르크스주의자 아냐?”라고 수군거렸다. 미국의 한 보수 논객은 새 교황이 “빨갱이 사상(pure Marxism)을 늘어놓고 있군” 하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혹자는 ‘정치를 좋아하는 교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인간 소외를 심화하는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53항)라는 비탄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10년 전 미국 마이애미 헤럴드에 실린 만평. “누가 당신에게 그런 사상을 심어줬소? 교황은 빙그레 웃으며 뒤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교황의 진보적 개혁적 메시지
교황의 메시지에 진보적, 개혁적 단어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해방신학의 기조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대목도 있다. 한 예로 교황은 ‘밖으로 나가는 교회’를 강조한다. 이는 “교회는 밖에서 활동하기 위해 건조된 배이기에 항구를 떠나 대양에서 파도와 싸우며 나가야 한다”는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1992년 환속)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또 ‘Popolo’(사람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민중의 개념에 가까울 때가 더러 있다.
베르골료(교황의 옛 이름)의 신학적 사상을 살찌운 토양이 아르헨티나라는 점을 상기하면 교황의 언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1964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군사 쿠데타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 정권들은 가혹한 독재 정치로 국민을 탄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적 착취가 심해지면서 국민은 더 가난해졌다. 교황의 고국 아르헨티나만 하더라도 군부는 1976년 정권을 탈취한 후 악명 높은 ‘더러운 전쟁’을 벌이며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 교황은 당시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맡고 있었다. 민중이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고, 또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생겨난 신학적 흐름이 해방신학이다.
해방신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마르크스주의의 분석 틀로 사회 문제를 바라봤다는 혹평부터 민중에게 구원의 희망을 안겨준 진정한 민중신학이라는 평가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교황이 해방신학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은 없다. 교황은 “신앙은 정치적 이념이나 사회운동이 아니다”라고 자주 강조한다. 해방신학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 해석된다.
교회는 정치 참여 의무 있어
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교회가 특정 정파나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호되게 꾸짖는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증진을 위한 일이라면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정치,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인신매매 같은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교회는 정치에 관여할 의무가 있다”(2016년 세계 법조인 모임 연설)고까지 발언했다. 교황이 말하는 정치는 넓은 의미의 정치다.
최근에도 사회,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10월 22일 삼종기도 훈화에서 신앙과 일상생활은 별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만일 별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앙을 현실의 구체적인 삶, 사회의 도전, 사회 정의, 정치 등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신적 어려움’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지난 9월 복자 호세 시스네로스의 선교적 삶을 기리면서도 같은 메시지를 내놨다.
“복자는 오늘날의 중대한 사회, 경제, 정치 문제에 헌신하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두고 말만 하고, 혹은 불평하거나 비난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못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도록 부름 받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팔을 걷어붙이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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