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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이-팔 평화 정착은 ‘두 국가 해법’ 이행 뿐

참 빛 사랑 2023. 10. 23. 14:47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정녕 공존의 길을 찾을 수 없는가. 많은 사상자를 낳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은 이 오래된 문제를 또다시 소환한다.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교전이 시작된 7일 기자들을 만나 “이-팔 사이의 공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또 그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공식이 발견될 때까지 이러한 충돌은 매우 격렬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제 사회는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확실한 해결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국가 해법 ‘흐지부지’

확실한 해결책은 이미 30년 전에 나왔다. 1993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합의한 이른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이다.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로 승인하고, PLO도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파들이 이 해법에 반대했다. 협정에 서명한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자국 민족주의자에 의해 암살됐다. 이어 팔레스타인의 급진 무장 정파 하마스가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면서 협정은 유명무실해졌다. 사실 두 국가 해법을 이행하려면 이스라엘 정착촌 철수, 동예루살렘 소유권 분쟁,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 서로 양보하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할 세부적 난제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 지도.

그럼에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이보다 더 좋은 평화 정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황청도 팔레스타인에서 포성이 울릴 때마다 두 국가 해법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한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인들의 생각은 엇갈린다. 중도ㆍ진보파는 지지하는 편이다. 대다수 팔레스타인 주민도 평화로운 공존을 원한다. 하지만 시온주의자와 정통(종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더는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팔레스타인 급진 무장 정파도 불공평한 공존에 반대한다. 특히 유다교ㆍ그리스도교ㆍ이슬람 모두에게 핵심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영유권 논란에는 양측 모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팔 분쟁은 외견상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이 촉발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갈등의 뿌리는 구약시대 초기까지 닿는다. 유다 민족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구약의 하느님이 명령한 대로 몰아내고 전멸시켜야 할 이민족이다.(신명기 7장 참조) 다윗이 돌멩이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1사무 17) 것처럼 두려움 없이 맞서 쓰러뜨려야 할 적이다. 양측의 원한과 적대감은 그만큼 뿌리가 깊다.

이번 충돌은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가 과거보다 더 심하게 팔레스타인을 궁지로 몰아넣고, 하마스가 더 과격한 방법으로 반발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폭력의 규모만 다를 뿐 건국 이후 75년간 이어진 분쟁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종교 차이는 영토 확장과 패권 장악 욕망을 위장하는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만남과 대화부터 시작해야

파롤린 추기경이 언급한 확실한 해결책을 위한 ‘기반 마련’은 만남과 대화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관련해 “만남에는 동의하고 충돌에는 동의하지 않을 용기, 대화에는 동의하고 폭력에는 동의하지 않을 용기, 협상에는 동의하고 적대감에는 동의하지 않을 용기…”(이스라엘 성지의 평화를 위한 기도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스라엘이 이 호소에 얼마나 귀 기울일지는 의문이다. 무력 충돌이 발발한 7일 가톨릭과 정교회 등 범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초한 우리의 신앙은 양측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폭력과 군사 활동을 중단하도록 촉구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황청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은 즉각 ‘부도덕한 언어적 모호함’ 일색인 성명이라고 쏘아붙였다.

파롤린 추기경은 “지금은 다들 감정에 휩싸여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함께 반성하기 위해서는 잠시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시온주의

시온주의를 빼놓고는 이-팔 분쟁을 얘기할 수 없다. 서기 77년 이스라엘이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유다인들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았다. 특히 유럽과 러시아에서 차별과 탄압을 견디며 대를 잇는 동안 국가 건설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조상의 땅, 시온(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다 국가를 세우자는 것이 19세기 말에 태동한 시온주의 운동이다. 그들은 마침내 1948년 영국과 미국, 유엔의 지지로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하지만 그곳은 주인 없는 땅이 아니었다. 유목민 집단거주 형태로 살아오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졸지에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또는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당시 유엔은 주민 구성(무슬림 58%)과 토지 소유관계를 무시하고 전 지역의 56%를 유다 국가, 42%를 아랍 국가로 할당했다. 이-팔 분쟁에는 시온주의와 중동 석유 확보를 위한 강대국 개입, 극단(근본)주의자들의 욕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