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게 질의서를 보낸 추기경 가운데 한 명인 미국의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의 모습. 버크 추기경과 발터 브란트뮐러·후안 산도발 이니게스·로버트 사라·조셉 젠 추기경 등 다섯 명의 추기경은 질의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에서 교회의 교리 내용을 재확인했다. OSV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직전인 2일 일부 추기경이 제기한 신학적 질의에 대해 상세히 답변한 내용을 공개했다.
앞서 미국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과 독일의 발터 브란트뮐러 추기경, 멕시코의 후안 산도발 이니게스 추기경, 기니의 로버트 사라 추기경, 홍콩의 조셉 젠 추기경 등 추기경 5인은 지난 7월 교황에게 ‘두비아(dubia, 라틴어 의심)’로 불리는 질의서를 보냈다. △하느님 계시에 대한 해석 △동성 간 결합에 대한 교회 축복 △교회를 구성하는 차원에서의 시노달리타스 △여성의 사제품 △성사적 죄의 용서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서의 통회 등이다. 추기경들이 교회 진리와 관련해 직접 질의한 내용을 교황이 공개적으로 답한 것은 이례적이다. 답변은 교회 안팎에서 제기되는 교리적ㆍ성사적 과제에 대한 교황의 뜻이 담겨 주목을 받고 있다.
교황은 하느님의 계시를 인간학적인 변화에 따라 재해석해야 하는지 묻는 말에 “먼저 ‘다시 해석한다’는 단어의 의미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고 반문했다. 교황은 “이 말을 ‘더 잘 해석한다’는 의미로 본다면, (하느님의 계시를 재해석해야 한다는) 표현이 옳다”며 “하느님의 계시가 불변하고 언제나 구속력을 지니지만, 교회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고 하느님 계시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결코 다 파헤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화적 변화들과 새로운 도전들이 계시를 바꾸진 않지만, 몇몇 확언들에 대해 더 나은 표현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맞다’, ‘아니다’가 아니라, 교회 규범 안에서 더 넓은 차원의 복음적 식별이 필요하다는 교황의 의지로 풀이된다.
교황은 또 동성 간 결합에 대한 질문에 “혼인은 배타적이고 지속적이며 해소될 수 없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오직 이 결합만을 혼인이라 부를 수 있다”고 단언했다. 다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모든 결정과 태도에 스며있어야 하는 사목적 사랑을 잃어선 안 된다”며 “다양한 요소들로 그 죄가 감해질 수 있는 이들을 단순히 죄인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은 교회의 본질적 차원의 ‘시노달리타스’에 대해서는 “교회는 선교적 친교의 신비체이지만, 이 친교는 실질적 참여를 필수적으로 함축한다”며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삶에서 하나의 본질적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노드의 특정 방법론을 신성시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것은 시노드 여정을 얼어붙게 만들 뿐”이라며 보편 교회의 다채로움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여성 사제품 문제에 대해 답하면서 오히려 그 배경에 깔린 성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황은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과 직무 및 교계 사제직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교회 헌장」의 가르침은 신자들의 보편 사제직이 더 작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제직의 두 형태가 서로를 상호적으로 비춰주고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제직의 역할이 위계적 구조를 지닌다 할지라도 어떠한 지배의 형태로 이해해선 안 되며, 온전한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거룩함에 예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구분이 갖는 실천적 귀결들을 이해하고 다루지 않는다면, 사제직이 남성에게만 유보돼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며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를 이끄는 일에 참여해야 할 필요성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제직을 교회 내 권력이나 결정권, 혹은 평신도보다 높은 품위로 이해하지 말고 이러한 차원을 넘어 여성이 교회 내에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길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교황은 ‘통회’에 관해서도 “통회는 사죄경의 유효성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이 내용이 수학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고해성사에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만으로도 통회의 상징적 표현이 되고 하느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된다”고 답했다. 버크 추기경은 ‘두비아’와 관련한 보도들이 이어지자 “이번 질의가 교황 개인이나 교회 안건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교회의 항구적 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장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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