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수사국, 옛 라틴어 미사 선호하는 신자들과 특정 수도회를 극우단체와 연관 지어
옛 라틴어 미사를 선호하는 전통주의 가톨릭 신자들과 극우 성향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동일시하는 듯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메모가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메모에는 “전통 라틴어 미사에 관심이 있는 급진적 전통주의(radical-traditional) 신자들은 백인 극우주의자들 운동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적혀 있다. 한 인터넷 웹사이트가 공개한 이 메모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FBI 지국에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메모 내용은 가톨릭 전통주의자들이 인종 차별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메모에는 리치먼드에서 라틴어 미사를 거행하는 성 베드로 성직 형제회(FSSP)와 성 비오 10세 형제회(SSPX)가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FBI는 이들 단체가 전통주의자들의 ‘잠재적 접촉 지점’이라고 간주했다.
전통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
이에 대해 리치먼드교구장 베리 네스타우트 주교는 “교회 가르침에 인종주의와 종교적 편견, 폭력, 차별은 설 자리가 없다”며 “메모는 종교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반박했다. 또 “성 베드로 성직 형제회는 우리 교구에서 오랜 세월 봉사하면서 전통적 양식의 미사를 봉헌해온 수도회”라며 특정 수도회를 백인 우월주의 극우 단체와 연관시킨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네스타우트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7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밝혔듯, 하느님의 이름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며 “메모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종교 자유를 위해서라도 메모의 진실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FBI 본부 대외 협력국은 9일 메모 작성 사실을 시인하고 관련 내용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서구 사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극우 또는 우파 성향을 보인다. 그들은 흑인과 이슬람교도, 동성애자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차별과 폭력을 일삼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직후 출현해 지금까지 형태를 달리하며 활동하는 KKK(Ku Klux Klan)가 대표적 백인 우월주의 단체다.
프란치스코 교황, 트리엔트 양식 미사 제한
라틴어 미사를 선호하는 가톨릭 전통주의자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 이전의 전례(트리엔트 양식)를 따르려는 이들을 말한다. 현재 보편 교회가 사용 중인 미사 전례서는 전례 개혁 정신에 따라 1970년에 새로 발행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전통주의자들은 지금도 1962년 판 라틴어 「로마 미사 경본」 사용하고 있다. 일부 단체는 전례 개혁에 반발해 사도좌와의 일치를 깨고 이탈하기도 했다. 르페브르의 비오 10세 형제회가 대표적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트리엔트 양식을 고수하는 이들과의 일치를 위해 「로마 미사 경본」(1962년)을 사용할 수 있는 특별 권한을 부여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모든 사제가 장상(교구장)의 승인 없이 트리엔트 양식 라틴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을 통해 트리엔트 양식 미사 봉헌에 제한을 뒀다. 선임 교황들이 부여한 기회가 △도리어 차이를 심화시키고 △교회에 상처를 입히며 △교회를 분열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불화를 조장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부 전통주의자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 전승과 ‘참된 교회’를 배반했다고 주장하면서, 전례 개혁뿐 아니라 공의회 자체에 대해 거부한다”며 선임 교황들이 허락한 특별 권한을 철회했다.
그러면서 지역 교구장 주교들에게 트리엔트 양식 전례를 거행하는 단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지시했다. 옛 전례 양식을 따르는 단체는 「전통의 수호자들」에 열거된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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