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사(오른쪽)의 입을 빌려 영혼의 교만과 미소를 모르는 신앙이 ‘악마’라고 비판한다.
사진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장미의 이름’ 한 장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덕의 길을 걷는 우리를 자꾸만 잘못된 길로 잡아끄는 두 가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다.
두 사상은 그리스도교 초기에 이단 판정을 받았지만, 소멸하지 않고 매번 얼굴을 바꿔가며 2000년 역사에 등장했다. 워낙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당대 철학이나 시대사조와 결합해 신앙인들을 유혹하다 보니 그 정체를 단순 명료하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흔히 그리스도교라는 몸에 붙은 ‘영적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두 사상을 교황은 ‘성덕의 교묘한 적’으로 규정한다. 이 둘은 공통적으로 “가톨릭 진리를 가장한 인간 중심적 내재론을 드러낸다”며 기만적 사상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라고 불리는 영지주의의 뚜렷한 특징은 선악에 대한 이원론적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구전이나 비밀문서들에 들어있는 거짓 진리(신비한 지식)를 믿는다.
영지주의는 매우 해로운 이념들 가운데 하나라고 교황은 지적한다. “지식이나 구체적 경험을 지나치게 격상시키면서 실재에 대한 자신들의 고유한 시각을 완벽하다고 여기기 때문”(40항)이라고 설명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지주의에 물든 사람을 예로 든다. 모든 물음에 척척 대답하는 사람이다. 교황은 그런 사람은 “자기만의 심리적, 지적 이론을 펼치려는 사리사욕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거짓 예언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런 영지주의자는 자신이 신앙과 복음 전체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 자신의 이론을 절대화하고 무조건 따르라고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하지만 교황은 교리, 더 정확히 말해 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표현은 “물음과 의혹과 질문을 낳는 역동적인 힘이 없는 닫힌 체계가 아니다”(44항)라며 질문과 해석을 피하는 신앙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펠라지우스주의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 본성과 자유로운 의지의 결정에 따라 구원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이런 오류에 빠진 사람은 “인간 지성의 능력과 의지의 힘을 초월하는 은총의 선물”(「가톨릭교회 교리서」 1998항 참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기지도 않고, 형제적 사랑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교황은 이런 사고방식을 따르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힘만을 믿고, 정해진 규범을 지키거나 과거의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완고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49항)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율법에 대한 과도한 집착 △사회적, 정치적 쟁취에 대한 환상 △전례와 교리와 특권에 대한 허식 △실질적 일 처리 능력에 대한 자만 등의 경향을 보이는 사람을 ‘신펠라지우스주의자’라고 칭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 마지막 부분에서 세 부류의 악마를 꼽았다.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이 없다고 믿는 진리인데, 이것이 바로 영지주의와 펠라지우스주의에 물든 사람들을 비판한 것이다. 교황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이런 모습이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볼 것을 권한다.
이 권고에는 성덕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제시돼 있다. 선을 행하는 중에 겪는 고난과 굴욕을 겸손한 자세로 이겨내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교황은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는 성덕은 당신 아드님의 굴욕(십자가 수난)을 통해 왔다”며 “굴욕 없이는 어떠한 겸손도, 어떠한 성덕도 없다”(118항)고 이른다. 가정을 지키려고 침묵하고,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이들을 칭찬하고, 남들이 달가워하지 않은 일을 선택하는 게 모두 ‘일상의 굴욕’을 견디며 성덕으로 나가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또 성덕의 길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함께 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교황은 “성덕은 다른 이들과 나란히 함께하는 공동체 여정에서 성장한다”며 다른 이들과 함께 성인이 된 신앙의 증인들을 다수 열거하는데, 이 명단에 한국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동료 순교자들도 들어 있다.(141항)
교황은 “성덕의 길을 식별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 속의 기도”라며 우리에게 묻는다.
“주님의 현존 안에 조용히 머물며, 차분하게 주님과 시간을 보내거나, 주님의 눈길에 빠져들어 본 순간들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얼굴을 응시해도 치유되거나 변화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주님의 심장, 곧 그분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라”고 교황은 일러준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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