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2월 8일 일반알현에서 ‘아프리카의 꽃’이라 불리는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를 소개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거룩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서 이 점을 거듭 강조한다.
교황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주교나 사제나 수도자가 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또 성덕을 “일상생활과 거리를 두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할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직장인은 일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서, 젊은이는 친구들 안에서 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대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며 성덕에 다다르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교황이 일러주는 그 길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달 서울시 구청장들과 시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한 부씩 선물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부담 없이 읽고 그 속에서 ‘진주’를 캘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황 문헌이라고 하면 신학 용어와 형이상학적 개념이 가득한 수면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문헌은 그렇지 않다. 교황은 서두에서 “성덕에 관한 논문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히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또 등장한 요세피나 바키타 성녀
교황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1869~1947)를 고통에 굴복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모델로 제시한다.(32항) 지난해 2월 일반알현 때 표지에 사진이 실린 소책자를 들고 나와 “이 여인을 보라”며 소개했던 성녀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앞부분에서 이 여인을 희망의 증인으로 소개한 바 있다.
바키타는 7살 때부터 유럽 노예시장에서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물건’이었다. 주인들에게 매를 맞고 학대당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그의 몸에 난 흉터 144개는 모두 매질 자국이다. 어느 부잣집 딸 유모로 일하다 그간 자신이 섬겼던 주인들보다 더 높은 ‘진짜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세례를 받았다. 그때 이렇게 고백했다.
“태양과 달, 별들을 보면서 홀로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그분을 보고 싶고, 알고 싶고, 그분께 나의 모든 찬사를 드리고 싶은 갈망을 느꼈어요.”
이후 어렵사리 이탈리아 수녀원에 들어갔다. 주방과 빨래방, 안내실에서 수녀로 50년을 사는 동안 그의 단순함과 천상 행복을 만끽하는 듯한 미소가 동료는 물론 마을 주민들을 매료시켰다. 누구를 만나든 “착하게 살라. 주님을 사랑하라. 하느님을 아는 크나큰 은총을 잊지 말라”는 단순한 말뿐이었다. 선종 12년 만에 시복시성 절차가 개시된 것만으로도 그의 성덕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교황은 “바키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 존재와 인간 생명의 참주인이시라는 깊은 진리를 깨달았다”며 “우리는 주님께 의지할 때 종살이에서 자유로워지고, 우리의 존엄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슬픔과 고통의 망망대해에서도 하느님 손을 놓지 않으면 성덕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노여움 품지 말아야
교황은 디지털 소통 공간의 언어폭력 문제와 관련해 심지어 “가톨릭 매체 안에서도 도를 지나친 비방과 폭력이 난무”(115항)한다고 우려한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한국 가톨릭의 대표적 인터넷 소통 공간인 굿뉴스(Goodnews) 자유게시판에서조차 이따금 비방과 설전이 오간다.
교황은 언어 폭력을 일삼는 이들에 대해 내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타인을 맹렬히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불만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도 있다. 교황이 내놓은 처방전은 하느님께 굳건히 뿌리 내리기, 즉 내적으로 굳건해지기다.
“내적 굳건함으로 우리는 삶의 우여곡절을 인내하고, 다른 이들의 증오와 배신과 결점을 참아 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와 대적하겠습니까?’(로마 8,31) 이것이 성인들에게서 드러나는 평화의 원천입니다.”
이어 “빠르게 변하는 떠들썩하고 공격적인 세상에서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성덕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상기시키며 “거룩한 사람은 타인의 결점을 비난하는 데 힘을 써 버리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뒷담화(중상모략)만 안 해도”에 이어 온라인 공간에서 “선플만 달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성덕의 길을 걷는 중에 주의해야 할 5가지 위험도 알려준다. 현대 문화 속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위험들이다. △소모적이고 약해지게 하는 불안감과 난폭한 생각 △부정과 우울 △안일하고 소비적이며 이기적인 나태 △개인주의 △오늘날 종교시장을 지배하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빠진 온갖 형태의 거짓 영성 등이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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