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나 복자처럼 탁월한 덕행을 쌓아야만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랑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된 일을 마다치 않는 가장, 병의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환자 등도 모두 성덕(聖德)에 이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사도적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 표지 사진)를 발표했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실천하면 얼마든지 성덕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권고의 핵심이다. 소박하게 성덕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교황은 ‘옆집에 사는 성인들’이라고 칭했다.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대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권고는 교황이 평소 “우리는 매일의 삶 안에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해온 것과 궤를 같이한다.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여러 가지 압박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평신도들을 성덕의 길로 초대하는 안내서다.
교황은 성스러움이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총인 동시에 요청이라고 말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는 말씀을 상기시켰다. 성덕에 이르는 구체적인 길을 그리스도의 참 행복 선언(마태 5)과 우리가 최후의 날에 받게 될 심판의 기준(마태 25)에서 찾아 제시했다.
또 참 행복 선언에 나오는 ‘행복’이란 단어를 ‘거룩함’과 동일시했다. 그래서 거룩해지려면 “가난한 마음을 갖고, 타인에게 온유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고 행동하라”고 권면했다.(3항) 권고 제목은 참 행복 선언의 끝부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21)에서 가져왔다.
특히 2장 전체에 걸쳐 성덕의 길을 가로막는 두 개의 장애물(유혹)을 서술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초세기 교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신앙인들을 유혹하는 영지주의(gnosticism)와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다.
교황이 ‘성덕의 교활한 적들’이라고 지칭한 두 가지 유혹은 “그리스도의 권능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상의 힘이나 인간적 노력을 통해 구원을 찾으려는 방도들”이라고 비판했다. 또 율법에 얽매이거나 전례, 교리 등에 엄격한 경향을 보이는 ‘신(新)펠라지우스주의자’가 교회 안에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부 성직자들이 ‘이혼 후 사회혼자’의 영성체 허용 가능성을 계속 비판하는 데 대한 간접적 답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번 권고는 「복음의 기쁨」(2013)과 「사랑의 기쁨」(2016)에 이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 번째 권고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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