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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기획] (5·끝) 버려진 장애아들

참 빛 사랑 2016. 3. 9. 20:39


▲ 여주천사들의 집에 사는 아이들이 이동진 원장 신부에게 달려들어 안기고 있다.


영유아시설에 스무 살 어른도



“엄마, 이거 이거.” “아빠다! 안아줘요. 나도 나도.”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안아 달라, 업어 달라. 아이들 소리만 들으면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 방에 모여 있는 아이들은 스무 명. 모두 다운증후군이나 자폐 등 지적장애를 가졌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라 부르는 이들은 함께 지내는 ‘선생님’들이다.

경기도 여주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있는 여주천사들의 집(원장 이동진 신부)은 장애 영유아시설이다. 지체장애, 뇌병변, 지적장애를 지닌 아이 96명이 생활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서 버려졌거나, 장애 정도가 심해 다른 시설에서 맡을 수 없다고 보낸 아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영유아에 해당하는 일곱 살까지 아이들은 거의 없다. 96명 중의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스무 살이 훌쩍 넘었다. 천사들의 집에서 지낸 지 18년째다. 팔다리가 뒤틀려 누군가 대소변을 받아줘야 한다. 이런 중증 장애인이 두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또 스무 명이 있다. 천사들의 집에서 지내다 일곱 살이 넘으면 다른 시설로 가야 하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이곳에서 계속 지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데서 받아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지요.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출생 신고도 하고, 돌잔치도 해 주면서 돌봐 온 아이들이에요. 옹알이하고, 걸음마 떼고, 학교 입학하고 졸업하는 거 다 지켜본 우리 아이들,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죠.”



더 좋은 환경 위해 공사 중


원장 이동진 신부는 “영유아시설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교육이나 치료에 한계가 있다”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해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없는 형편에도 뭐든 해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이 신부는 결국 일을 벌였다. 천사들의 집은 현재 설립 19년 만에 전체 리모델링 중이다. 4월 말이면 공사가 끝난다.



사회의 관심 절실

“아이들은 새집이 생긴다고 잔뜩 기대하고 있어요. 혼자 쓰는 침대랑 책상을 가지고 싶어 하고요. 공사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 빚더미에 앉아 저 혼자 속을 썩고 있긴 한데, 아이들 생각하며 후원회원 모집하는 데 힘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고, 예쁜 옷 입고 싶어 하고, 엄마·아빠 사랑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건 또래 아이들이랑 똑같아요. 그저 장애가 있을 뿐이에요.”

어느새 아이들은 이 신부에게 안기겠다며 난리가 났다. 용케 이 신부 오른팔을 차지한 아이는 대롱대롱 매달려 신이 났다. 이 신부 품에 안긴 아이는 함박웃음이다. 언젠간 다른 시설로 옮겨져야 한다는 걸, 아이들은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있다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새벽엔 배달맨, 낮엔 ‘나눔 실천하는 독서광’



▲ 오광봉 할아버지의 단칸방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날다람쥐’, ‘신문 배달맨’, ‘독서광’, ‘부산 감천동 할아버지’….

이 모든 별명은 한 사람 것이다. 올해 여든넷의 오광봉(시몬, 84)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신문 배달을 매일 새벽마다 한다. 35년째다. 게다가 ‘날다람쥐 할아버지’란 별명까지 있다. 동네 주민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할아버지에게 붙여준 것이다. 실제로 오 할아버지는 잰걸음으로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널뛰듯 오르내리며 달동네로 유명한 부산 감천동 일대 400가정에 신문을 배달한다. 할아버지는 바쁘고 힘든 일과 중에 어려운 이웃도 돕는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힘들지”라며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자비를 실천하는 신문 배달맨’ 오광봉 할아버지를 부산 사하구 감천동 자택에서 만났다.



신문 배달 35년, 그리고 나눔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동.

6ㆍ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일군 이곳 일대는 이제 ‘감천동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 인근에 자리한 오광봉 할아버지 집은 사람 한 명이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골목 안 3평 남짓한 곳이다.

“신문 배달은 속도가 생명이에요. 매일 밤 11시에 신문 보급소로 출근해서 새벽 6시까지 배달을 마치려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죠.”

남들은 모두 곤히 자는 시간이 할아버지에겐 가장 바쁜 시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신문을 배달한다’는 진기한 사연에 2년 전엔 SBS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젊은이들보다 달리기도 빠르고, 명패 없는 집에도 신문을 ‘착착’ 배달하는 오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내 고향은 평안남도 진남포요. 6ㆍ25전쟁 일어나고 온 식구가 부산으로 내려왔지요. 가족과 오순도순 터전 잡고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소.”

할아버지는 이후 중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난한 이들의 사제’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사목했던 송도성당에 다녔다.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이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고 함께해 주셨어요. 그게 아직 기억에 선해요.”

그래서일까. 오 할아버지는 6년 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홀몸 어르신 4가정에 격월로 쌀과 생필품, 생활비 등을 지원해 오고 있는 것. 할아버지 월급은 60만 원. 자신도 홀로 살면서 생활비를 겨우 버는 형편이지만, 틈나는 대로 폐지도 모으며 자선단체에 기부까지 하고 있다.



밥은 안 먹어도 되지만 책은 꼭 있어야 해


“정신이 가난한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책은 소모되지 않고 정신을 살찌우죠.”

할아버지는 ‘독서광’이다. 월급의 3분의 1을 책 구입에 쓰고, 돋보기 없이 하루 1권씩 책을 읽는다. 3평 남짓한 할아버지 방은 아늑한 서점을 방불케 한다. 할아버지는 “이 방에 책이 3000권쯤 된다”고 했다. 매일 성경도 30분씩 읽는다. “혼자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다른 종교 서적들이 성경 내용의 뒷받침이 돼 준다”고 했다.

장자, 노자, 플라톤 전집 등 철학서적부터 자본주의, 경제학 서적을 넘어 한편에는 1600쪽에 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등 교회 서적까지 없는 게 없다. 지학순 주교 강론집 「정의가 강물처럼」 등 오래된 서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도 모두 정독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이들을 늘 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과 글이 아름답다”고 했다. 신문에 나온 신간 소식을 갈무리해 뒀다가 대형 서점과 바오로딸 서원에 가는 게 할아버지 낙(樂)이다.

할아버지는 쉼 없이 구입하고 소화한 책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몇 차례 TV 출연 후 생긴 팬 8명과도 늘 연락하며 지낸다. 모두 젊은 청년들인 이들은 할아버지가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매해 배송해 주고, 방문도 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편지에는 “할아버지 책 선물 고맙습니다. 책을 많이 주신 만큼 제가 빨리 읽지 못해 오히려 죄송합니다”란 내용이 있다.

“지혜는 우릴 배부르게 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죠. 책을 나누는 건 좋은 생각과 감수성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잖아요.”



할아버지의 소원은

할아버지는 1990년께 이혼한 뒤 지금껏 홀로 살고 있다. 가족들과 연락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젊은 시절 가내수공업을 하다 그만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은 엄지손가락뿐이다. 이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 대학까지 다 보냈지만, 한때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내 잘못”이라며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엔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에겐 꿈이 두 가지 있다. 한 번이라도 가족을 만나는 것, 그리고 서원(書院)을 차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담한 서원에서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토론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내가 가진 건 지금까지 모은 책과 작은 지식입니다. 이걸 나눈다는 것은 제겐 큰 기쁨입니다. 좋은 것 있으면 혼자 누리기 아깝잖아요. 나중엔 교회에 다 기증할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