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헐벗고 배고픈 노숙자들
▲ 2월 23일 밤 9시를 넘겨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급식 도시락으로
때우는 노숙자의 한끼가 무척 애처롭다.
이힘 기자
2월 23일 밤. 반짝 추위에 일찌감치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 노숙인들을 위한 급식이 시작됐다. 주변의 웅성대는 소리에 30대 후반의 신 아무개씨는 포장용 종이상자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찢어진 비닐로 대충 가린 속옷 사이로 언뜻언뜻 맨살이 비친다.
준비한 음식을 나눠주던 꽃동네 도시락 담당 박미혜(야고보,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수녀가 그를 보고 아는 체한다.
“아니, 지난번에 동대문시장에서 사다 드린 점퍼는 어쨌어요?”
“자고 일어나보니 없어졌어요. 누가 훔쳐 갔나 봐요. 수녀님!”
“그러게, 잘 입고 다니시라 했더니!”
박 수녀는 안타까워하며 밥과 돼지 등뼈를 넣고 끓인 김치찜과 삶은 달걀, 빵을 담은 도시락을 건넨다.
밤 9시가 다 돼 시작된 급식에도 을지로입구역에서만 노숙인 110여 명이 몰려들었다. 급식에 이어 중고의류를 나눠주자 서로 옷을 가져가려는 노숙자들 손길이 바빠진다.
영하 7℃로 뚝 떨어진 추위를 어떻게 견딜까. 노숙인 정 아무개(54)씨는 “10시쯤이면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나눠주는 봉사 단체가 있다”며 “그 페트병을 안고 자면 아침까지 뜨끈뜨끈하다”고 말을 건넨다. 그래도 온수 페트병 하나로 버티기엔 추위가 엄혹하다.
밤길을 걸어 봉사자들과 함께 종각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니 종각역 지하 보도에도 어김없이 노숙인 20여 명이 진을 치고 있다.
급식 직후 이불을 받아가던 이 아무개(67)씨는 “사별하고 딸 하나 있는데, 딸은 자기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만 사돈이 함께 사는 집에 어떻게 들어가겠느냐”며 “10년이 넘은 노숙생활로 이도 다 빠지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이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들도 예전에는 꿈이 있었으련만 오랜 노숙으로 몸도, 마음도 다 피폐해졌다.
밤 10시 반이 넘어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하 보도에 누워 추위에 떨던 노숙자들은 도시락이 도착하자, 재빨리 달려와 줄을 선다. 헌데 갑자기 말싸움이 벌어졌다. 누군가 새치기를 하자 격한 고성이 오간 것.
이미 급식을 받았으면서도 도시락을 하나 더 받아든 현 아무개(58)씨는 “아는 분이 쪽방촌에서 굶고 있어 도시락을 더 챙겼다”며 “우리끼리라도 도우면서 살 수밖에 없다”며 쓸쓸히 사라졌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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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찬노숙’(風餐露宿)이라면, 혹 멋지다는 뉘앙스로 들릴지도 모른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자는 일이 ‘한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숙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을씨년스런 지하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냉기와 바람, 추위를 포장용 종이 상자와 외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신산스러운 삶이 어찌 쉬울까? 한 해 평균 400여 명이 거리에서 숨진다는 통계도 있고 보면, 노숙은 인생의 막장이나 다름없다. 사순 시기 네 번째 기획으로 ‘헐벗고 배고픈 노숙인’ 실태와 복지 현황, 대안에 대해 돌아봤다.
노숙인,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혜택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길거리에서 한뎃잠 자며 얻어먹는 노숙인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와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해가 2012년 6월이니 말 다했다.
우리나라에서 노숙인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시기는 1997년 IMF 사태로 실직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다. 이때 거리로 쏟아진 노숙인은 5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2005년 1만 5785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2014년 1만 2347명으로 줄었다(보건복지부,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2015」). 그중 3분의 1인 4500여 명이 서울시 일원 지하철역이나 공원 등지에서 먹고 잔다(「2014년 서울시 노숙인 실태조사 요약」). 또한, 여성 노숙인도 8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왜 노숙을 하게 됐을까? 빈곤과 저학력, 불확실한 일자리와 촘촘하지 않은 사회적 관계 네트워크, 불안정한 결혼 생활과 허술한 가족 관계 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인 201명 가운데 52%는 실직이나 사업 실패 탓에, 16%는 가정 해체로, 6.6%는 부채와 신용 불량으로, 10%는 질병과 장애로, 4.6%는 주거 상실로 어쩔 수 없이 노숙하게 됐다고 답변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노숙인 복지, 교회 사도직 활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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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3일 밤 9시가 다 돼 서울 불광동 꽃동네도시락 팀의 늦은 급식이 시작됐는데도 서울 을지로입구역은 100명이 넘는 노숙자들이 몰렸다. 꽃동네도시락 팀은 을지로입구역, 종각역에서 급식을 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힘 기자 |
▲ 2월 23일 밤 9시가 다 돼 서울 불광동 꽃동네도시락 팀의 늦은 급식이 시작됐는데도
서울 을지로입구역은 100명이 넘는 노숙자들이 몰렸다.
꽃동네도시락 팀은 을지로입구역, 종각역에서 급식을 하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힘 기자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 현황은 어떨까? 일정한 주거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며 살아가는 이들뿐 아니라 노숙인 복지시설 이용자, 전국적으로 8000여 개(서울만 3000여 개)에 이르는 쪽방 생활자도 사실상 노숙인이기에 이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숙식을 해결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노숙인 복지대책의 관건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숙인 일시 보호ㆍ자활ㆍ재활ㆍ요양ㆍ급식ㆍ진료 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노숙인의 자립 지원을 위한 전문 직업 상담과 훈련, 치료와 재활 서비스가 겉돌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일시 보호 쉼터는 최장 체류 기간이 20일에 그칠뿐더러 그마저도 일회성에 그치고 때론 종교생활 강요나 빡빡한 규율로 ‘숨쉬기조차’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톨릭 교회도 IMF 때 노숙인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자 노숙인 사목을 본격화했다. 물론 이에 앞서 꽃동네회 등이 부랑인 시설을 둬 이들을 돌봐 왔지만, 대량 실직 시대를 맞아 ‘수용’ 차원을 벗어나 재활과 사회 복귀로 방향을 틀었다. 이같은 활동 덕에 2015년 말 현재 서울대교구 내에 노숙인 요양시설인 서울특별시립 은평의 마을, 급식 시설 프란치스꼬의 집, 까리따스 사랑의 식당과 토마스의 집, 하상바오로의 집 등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노숙인을 돕기 위한 종교계의 협력과 연대도 주목할 만한 성과다. 2012년 12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바보나눔 축제를 계기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개신교ㆍ원불교ㆍ불교계가 ‘종교계 노숙인 지원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2014년 9월에는 ‘종민협 노숙인 지원 주택 개원식’을 한 데 이어 2015년 하반기에는 자활 의지가 강한 노숙인 16명에게 지원 주택을 배분했다.
노숙, 그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노숙인이 “실제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현장 활동가는 거의 없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이들로 인해 노숙인이 줄었다는 우울한 보고는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나 지자체 노숙인 지원이 타 사회복지 분야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음성 꽃동네 노숙인 시설인 아나빔의 집 센터장 소신동(안드레아) 수녀는 “노인 요양 시설, 장애인 시설 등은 2.5대 1에서 10대 1 정도로 돌볼 인력이 배치돼 있다면, 노숙인 시설은 50대 1로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노숙인의 근본적 치료나 재활은 어려울 뿐 아니라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은평의 마을 시설장 이향배(필립보) 수녀는 “시설 운영을 위탁받고 나서 재활이냐, 요양이냐를 놓고 1년간 시행해 봤는데, 1000여 명 중 재활자가 두세 명밖에 나오지 않아 결국 노숙자 요양 시설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재활과 사후 관리는 시간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과정이 뒤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장 실무자들은 정부가 노숙 진입에서 탈출까지의 경로를 세밀히 분석해 노숙인 재활과 치료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행히 정부가 최근 처음으로 ‘노숙인 지원을 위한 종합 계획’을 수립, 노숙인 사회복귀 체계 구축에 나서 어떻게 이 체계를 만들어갈지 주목되고 있다.
노숙인에 대한 사회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다들 ‘나는 예외’라고 여기지만, 실직이나 파산, 가정 해체 등으로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숙인은 ‘혐오’가 아니라 ‘관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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