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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소피아(Trans-Sophia)는 ‘넘어섬의 지혜’를 뜻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자기 경계를 넘어서는 정신의 본질적인 핵심 개념이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7~348/7년경)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와 연결되는 이 개념은 인간이 사고의 경계에 갇혀 제약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넘어서는 ‘지혜의 초월성’을 뜻한다. 트랜스 소피아는 철학상담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경직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 더 큰 실재의 세계로 나갈 수 있게 된다.
사실 삶의 문제는 많은 경우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경직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를 구성하는 사고의 틀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반성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두는 경직된 세계관과 그 한계를 인식하고, 그 틀을 넘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때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전체로 향하는 정신의 초월적 운동을 이끄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성’이다. 우리는 영성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규정을 넘어서는 초월의 경험을 할 뿐만 아니라 경직된 사고의 경계를 넘어서 더 큰 실재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
인간은 본성상 유한과 무한, 시간과 영원, 육체와 영혼의 양극단을 잇는 ‘사이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기를 규정하고 경계 짓는다. 이 경계가 바로 넓게는 세계 자체이며, 좁게는 나의 고유한 세계인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 경계 안에 존재한다. 불현듯 다가오는 삶의 고통은 대부분 내 사고의 경계 안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타인과 긴장하고, 충돌하고, 투쟁하면서 자기 자신으로 있고자 부단히 애쓴다. 만약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선 취해야 할 태도는 나의 한계이기도 한 익숙하고 견고한 사고의 틀을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개방된 사고를 갖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쉽게 그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경계의 견고성 때문이다. 우리는 경계에 너무 익숙해져 거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똬리를 틀곤 한다. 우리 사고의 틀인 경계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개념과 관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세계를 표상하고 자기를 표현하며, 또한 사고의 패턴을 만든다. 이는 매우 견고해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특별히 이를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한 개념과 관념은 이념으로 더욱 견고해지며, 나에게 매우 익숙한 패턴이 되어 고정된 사고의 틀을 형성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경계를 넘어서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내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내적 자유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안주하는 위장된 평화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낯섦과 새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자기규정을 넘어서는 용기에 있다. 익숙함에서 낯섦에로의 경계를 넘어섬은 그 어떤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요, 절대적 의미를 향한 자기 초월의 운동이다. 자기 초월은 경계를 넘어서 더 큰 실재의 세계로 나가도록 내적으로 자기를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곧 내적 자유를 통해 자기를 구속하는 제한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 진정한 자기 존재로 돌아가는 ‘자기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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