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의 유치원 시절 일입니다. 하루는 하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무리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가득 장미꽃을 안은 무리 중앙에 선 여성의 머리엔 월계관이 놓여있었습니다. 아마도 막 대학을 졸업한 듯했습니다. 무심히 그들 곁을 지나치는데 아들 이안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우구리!”(Auguri!, 축하해요!)
작은 아이의 축하에 그들은 몹시 기뻐했습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성이 장미꽃을 하나 빼서는 이안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니하오.”
옆에 서 있던 남성이 두 손을 합장하며 고마움의 표시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애써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장미 고마워요. 그런데 우린 한국인이에요.”
저의 말을 들은 그들은 잔뜩 당황했습니다.
“어머! 미안해요. 어쩌지···. 한국말 인사는 모르는데 어쩌지···.”
저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뒤돌아섰습니다. 제 뒤를 따라오는 아이는 손에 장미꽃을 들고 마냥 신이 났는지 노래까지 흥얼거렸습니다.
“엄마! 엄마! 너무 예쁘지? 엄마! 너무 좋지? 엄마 꽃 좋아하잖아. 그런데 엄마? ‘니하오’라고 하면 꽃을 주는 거야?”
아이의 질문이 저를 멈추어 세웠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꽃을 보았고 저는 가시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장미가 향기로워 선물했는데 저는 가시가 있는 장미로 상처를 주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HELLO’라고 인사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저는 기분이 몹시 상했을까요? ‘니하오’ 안에 정말 우리에게 상처를 주려는 가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요? 향기로운 장미에 붙은 가시로 상처를 만든 것은 저 스스로가 아니었을까요? 혹여 그들이 가시 돋친 장미를 선물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향기로운 장미로 받으면 나에겐 향기만 남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요? 그날의 저는 꽃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안, 세상엔 많은 인사가 있어. 차오, 헬로, 올라, 니하오. 모두 안녕이라는 말이야. 모두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거야.”
지난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어린이의 날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교황은 5월 25~26일 ‘제1차 세계 어린이의 날’을 맞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뤄진 담화에서 “혼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기쁨은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커진다”면서아름다운 우정을 강조하였습니다.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며, 우정이란 바로 이렇게 두려움이나 편견 없이 인내와 용기, 나눔과 용서 안에서 자라난다는 말 속에서 그날의 장미꽃을 떠올렸습니다. 두려움과 편견 없이 향기로운 우정을 쌓는 행복을 그려보았습니다.
김민주 에스더(크리에이터·작가, 로마가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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