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실버존 지정·확대 권고 노인복지센터 앞에 실버존 표시해야

9일 오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어르신들에 대한 취업상담, 문화와 교육, 영화감상을 비롯한 취미 생활 등 각종 노인 관련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서울시가 설립한 대표적인 노인복지시설이다.
노인복지센터 바로 앞 삼일대로 큰길 바닥에는 제한속도 시속 30㎞를 알리는 글씨가 쓰여 있다. 그러나 바닥 글씨는 노인들을 위해 쓴 게 아니다. 흰색으로 칠해진 글씨는 ‘어린이 보호구역 천천히’다. 100여m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주의를 당부한 것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경로당ㆍ양로원ㆍ노인복지시설 등 65세 이상 노인들이 자주 통행하는 곳에는 사고 위험을 막기 위해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을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강화되는 스쿨존과 달리 실버존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전국 스쿨존은 1만 6759곳에 달하지만 실버존은 2673곳에 불과하다.(2021년 말 기준, 행정안전부)
실버존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과 마찬가지로 주정차가 금지되고 차량 운행 속도는 시속 30㎞로 제한된다.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스쿨존처럼 과태료가 일반도로에 비해 2배가 적용된다. 다만 실버존 사고는 12대 중대과실에 포함돼 있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노인복지센터 바로 앞 도로에도 노인들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는 바닥 표시가 없을 정도로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여성 안심 귀갓길’과 달리 실버존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실버존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5월 26일, 행정안전부장관 및 경찰청장에게 노인보호구역 지정·관리 실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노인보호구역 지정 확대 및 보호구역 내 안전대책 강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회의장에게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조속히 심의해서 입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노인보호구역 내 자동차 등의 통행 속도를 시속 30㎞ 이내로 제한하고,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를 설치하는 등 노인보호구역 내 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인권위가 이러한 권고를 한 것은 우리나라 노인 교통사고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도로 횡단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1093명 중에 57.5%인 628명이 노인이다. 또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2.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7.9명에 비해 3배가량 많다. 인권위는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노인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노인보호구역 지정 및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이를 확대·개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회복지전문가나 복지기관 종사자들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 주의 표시가 더 눈에 잘 띄게 하는 등 실버존에 대한 안전장치를 더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역 노인복지기관에서 일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서울본부 노인인권분야 김민철 강사는 “어르신들의 신체적 특성상 걸음이 좀 느리고 보폭이 좁다”며 “어르신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낙상이나 골절이 되면 생명으로도 바로 직결되는 만큼 노인보호구역을 좀 더 확장하거나 차량들이 이동할 때 어르신들의 안전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버존이든 스쿨존이든 특정 대상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위한 배려가 왜 생겼는지를 전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어르신들도 지역 안에서 온전하게 삶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사회사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후위기 시대에 종교의 역할 모색, 2022 종교인 대화마당 열어 (0) | 2022.06.22 |
---|---|
산업재해 노동자의 죽음 기억하고 예방하자 (0) | 2022.06.22 |
가톨릭중앙의료원 ‘보건사목 감염관리 교육’ 진행 (0) | 2022.06.15 |
도보 순례하며 외친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전국 곳곳에 울려퍼져 (0) | 2022.06.15 |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개정안 통과, 잇따른 비극 멈출까 (0) | 202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