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홍콩교구장 스테판 차우 사우 얀 주교(Stephen Chow Say-yan, 61)는 4일 거행된 서품ㆍ착좌 미사에서 ‘다리’가 되고 싶은 소망을 가장 먼저 피력했다. 차우 주교는 “홍콩 정부와 교회, 가톨릭 신자와 다른 종교인들 사이에서 다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이 없는 교회에는 미래가 없다”며 젊은이 양성에 주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홍콩교구는 사회 한가운데서 의미 있는 치유자가 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이날 착좌 미사 강론에는 최근 2년간 계속된 민주화 시위로 많은 상처를 입은 홍콩의 현실과 그에 대한 목자로서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홍콩 정부는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 진압했다. 본토 정부가 국가보안법 시행까지 밀어붙이는 바람에 사회적 혼란과 균열은 더 심해졌다. 민주화 시위에 앞장선 젊은이들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거대한 공권력 앞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홍콩의 가톨릭 교세는 작지만, 가톨릭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300여 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친중파 일각에서는 가톨릭계 학교를 반중(反中) 세력의 온상으로 지목한다. 반대로 젊은이들은 교회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정부와 본토 공산당의 탄압에 함께 저항하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친민주주의 진영의 실망감은 교회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널리 알려진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 신자가 어떻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본토 정부 편에 서서 시위대를 탄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친민주주의 진영에서는 그를 ‘공산당 기관원’이라고 비난한다.
홍콩 사회는 친중파와 친민주의파로 갈라져 있다. 빈부격차와 세대 간 갈등도 극심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차우 주교가 첫 일성으로 “다리가 되겠다”고 한 이유다.
홍콩교구장좌는 2019년 1월 마이클 융 주교 선종 이후 2년 반 넘게 공석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친중파 성향의 주교를 후임자로 임명하면 친민주주의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친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주교는 친중파는 물론 베이징 정부와도 갈등을 빚을 수 있다.
교황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했다. 그동안 민주주의 진영과 친중파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차우 주교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중국 본토와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는 중도적 성향의 성직자다. 그는 예수회 출신이다. 홍콩에서 태어나 미국과 아일랜드에서 수학한 뒤 2018년부터 예수회 중국관구장으로 봉사했다. 중국관구장은 홍콩과 본토는 물론 대만과 마카오도 관할한다.
그가 홍콩교구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접한 예수회 총장 아르투로 소사 신부는 “예수회원들은 중국 인민들과의 관계를 자랑스레 여긴다. 이 친교는 중국 문화를 존중했던 위대한 선교사 마테오 리치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교구민들도 새 교구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차기 교구장으로 거론되던 성직자들은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입장이 뚜렷해 교구민들은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