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는 자전거로 10분 정도 걸리는 성당에 다녔다. 그곳은 영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가톨릭교회로, 나처럼 외국인이 많았다. 한인 성당이 멀기도 했고, 또 이때가 아니면 언제 영어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싶어 다니게 되었다.
오랜 복사 활동을 통해 미사 통상문이나 독서·복음은 한국에서도 외울 정도로 익숙했으니, 살짝만 들어도 ‘아, 지금 이 전례 중이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톨릭 앱에 올라온 일정과 같았기에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미사 시작 10분 전에 도착해 스마트폰으로 그날의 전례 내용을 예습하곤 했다.
신부님은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그 성당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신자들, 특히 2~4년 단위로 신자들의 유동이 잦아 특별한 점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떠올려 보면, 미사 중 다양한 언어로 불렀던 성가곡들, 평화의 인사 때 제대 아래로 내려와 성당을 크게 한 바퀴 돌며 거의 모든 신자와 포옹하고 악수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1년에 한 번은 모두 모여 각국 음식을 요리해 하루 종일 나눠 먹는 행사가 있었고, 가끔 반려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는 미사도 있었다. 하지만 주일 오후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는 많지 않았다. 우리 성당뿐만 아니라 유럽을 여행하며 방문했던 대부분 성당에서도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한국보다 적다고 느꼈다.
하루는 작곡가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중에 기도하며 성호를 긋는 내 모습을 본 이탈리아 친구가 자신도 하지 않는 기도를 내가 하고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갑자기 죄를 지은 기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는 그리스도인이 많은지, 나는 어떻게 믿게 되었는지 묻다 보니, 어느새 다 함께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가 바탕인 환경에서 태어나 피터(베드로)·카타린느(가타리나)·베로니카·니코스(니콜라우스)·마태오·사라·루카스·스테판(스테파노) 등 성경에 나오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갔던 기억이 있지만, 언제부터인가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모태 신앙이 당연한 환경에서 자라서일까? 그리스도교적 행동과 사고가 자연스럽게 밑바탕이 된 것 같았다. 미사 때 들었던 독서와 복음, 신부님 강론이나 교리 시간에 배운 내용이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고 양보하며, 믿고 도와주고 용서하는 따뜻한 마음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놀라다가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기도 중에 한 가지 바람을 더 추가했다. 어떤 상황이든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유롭게 상대를 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보통 그런 순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찾아오고, 찰나에 지나가 버려 지나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쉽지는 않지만, 조금씩 더 관용을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손일훈(마르첼리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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