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온 전쟁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이 전쟁은 비정상적인 나치와 군국주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들을 선택한 것은 독일과 일본 국민이었다. 이들은 불법적 쿠데타로 집권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과정을 통해 집권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1차 세계대전과 1929년의 대공황이 제2차 세계대전의 근본적 배경이 되었지만, 실제 이들이 정권을 잡는 데 가장 직접적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 왜곡 또는 가짜 뉴스와 그로 인한 국민들의 불안감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독일의 경우 1933년 발생한 국회의사당 건물 방화 사건이 나치 집권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국회의사당에서 불이 나자 방화 용의자로 네덜란드 출신 공산당원이 체포되었고, 나치당은 이를 공산주의에 의한 음모로 몰아갔다. 히틀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 비상사태법’을 제정해 모든 개인의 기본 자유를 제한하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했다.
1950년대 이후 많은 연구자들은 이 사건의 진상이 불투명하며 심지어는 나치의 자작극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붙잡힌 방화범이 진짜 범인인지도 명확하지 않았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나치가 신속하게 대응한 사실도 주목되었다.
또 다른 왜곡은 독일의 반대편에 있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발생했다. 1931년 만주사변의 계기가 된 사카린 폭파사건이 일본군의 자작극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 폭파사건은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통제하고 있던 만주철도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군의 대응은 마치 계획했던 것처럼 신속했다.
만주 침략을 통해 괴뢰 만주국을 건설했던 일본은 1937년 베이징에서 중국군과 충돌했고, 이 사건은 이후 8년간의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일본은 중국이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여부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사건 자체가 거대한 전쟁으로 이어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또 하나의 재앙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통킹만 사건에 의해 발생했다. 북베트남이 통킹만에 있었던 미국의 구축함 매덕스를 공격했다는 것인데, 이후 조사에 의하면 북베트남의 공격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국의 구축함이 다른 소리를 북베트남의 공격으로 잘못 판단했다는 것이다.
통킹만 사건은 존슨 대통령에게 전권을 부여했다. 미국 사회는 미국을 공격한 공산주의자들이 동남아시아 전체를 공산화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후 10년간 미국은 최악의 전쟁을 경험했다. 이후에도 통킹만 사건이 은폐되거나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계엄령 파동 이후 지금 한국은 정보의 홍수에 묻혀 있다. 그중에는 조작되고 왜곡된 정보, 가짜 뉴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진실보다 왜곡된 사실과 정보가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음을 보여준다. 탄핵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이 가져올 후폭풍이 걱정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엇이 진실인지, 평화를 위해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박태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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