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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새해다. 전례력과 양력으로 새해를 시작한 우리는 이제 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려 한다. 무려 세 번의 새해를 맞이하지만 기쁨보다 을씨년스러운 지난 혼란과 슬픔을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이 무겁다. 100년 전 1905년 을사늑약의 비참함이 이후 역사에 배어들었듯 어제를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은 내일을 맞지 못하고 어제에 갇혀있다. 이럴 순 없다고, 뭐라도 해보자고 새해 결심을 세워보지만 희망의 언어가 아닌 복수의 언어가 입에서 맴돈다.
여기에 위로와 휴식의 장소인 본당마저 혼란과 슬픔에 빠져있는 것 같아 어지럽다. 신부·수녀가 아무리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 속에 살아가는 신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본당 여러 모임에서 교우들 간 다른 의견은 존중받지 못하고, 결국 헤어질 결심으로 이어진다는 소식은 가슴 아프다. 그래도 미워한 마음이 불편해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지만, 진정으로 통회하지 못한 고백에는 여전히 증오가 묻어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서로를 ‘정의의 이름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는 통합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개선장군이 되어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 민주적 절차를 벗어나 무기를 든 군인을 보내서라도 틀어막으려고 했다. 정치인들은 신념과 대의는 고사하고 입에 발린 정책조차 없는 선거 운동을 했다. 양당제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권력은 돌고 도는데, 시민들 삶은 그대로다. 정치인의 눈가림에 유권자들은 나와 공동체 발전에 도움되는 정치인이 아닌, 거악을 제압하기 위한 차악에 투표한다. 전쟁 같은 선거에 패배한 이들은 선거를 비롯해 자신들과 반대 진영의 모든 것을 부정하려 한다. 여기에 돈만 생각하는 유튜버들의 선동은 세상 혼란에 기름을 부었다.
그래도 끝날 것 같지 않던 혼돈이 계엄 당사자들의 구속과 체포로 일단락되고 있다. 이제 사법의 시간이다. 거리에는 여전히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내지르는 고성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사법 절차는 진행된다. 이제 사법 절차의 결과를 기다리며 거리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두 광장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교회도 일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함께해야 한다. 응원봉을 들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화장실을 안내했던 한 수도원이 보여준 대응이 본보기다. ‘난방 성당’의 화장실을 비롯한 수도원 개방 후 세간의 높아진 관심으로 수도원에 많은 취재 요청이 왔다. 하지만 수도원은 모든 취재를 거부하고 다시 수도(修道)의 길로 들어갔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던 종의 대답처럼, 겸손되이 침묵의 기도로 돌아간 모습이 수도원을 신비스럽고 성스럽게 만들었다.
이제는 기도의 시간이다. 기도를 물러섬으로 보는 것은 세상 기준이다. 기도는 묵비권이 아니다. 1987년에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수도자들이 바친 기도가 군사정권에 부담을 줬듯이, 침묵하는 기도에는 힘이 있다.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눈으로는 똑똑히 보고 있다는 시선의 외침이다. 그리스도인 모두 성조기와 태극기를 내려놓고 십자가와 묵주를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회가 화해와 일치의 기도를 바쳐야 한다. 비상계엄이 그 어렵다는 아이돌 팬클럽들을 하나로 만들었듯이 이제는 교회가 이념을 넘어 화해와 일치의 중심이 돼야 한다. 이 싸움을 우리가 끝내야 한다. 여기는 친중·친일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임을 보여줘야 한다. 응원봉을 손에 든 젊은이와 태극기를 손에 든 어르신이 서로 평화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 그렇게 기도 안에서 일치와 화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 세상 사람들은 ‘교회는 참으로 평화로운 곳’이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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