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을 든 한 수도 사제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대통령 관저 인근에 사는 수도 사제가 집회 현장에서 시위를 하느라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시민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응원봉을 밝히며 수도원으로 안내해준 것이다. 그 모습이 참 ‘교회답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2009년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뒤 명동 일대를 가득 채운 조문 행렬을 지켜보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던 젊은이들을 품어 보호한 이가 바로 그였다고. 이제 와 비상계엄을 겪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시 펼쳐본 그 시절 가톨릭평화신문에는 “교회는 자기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있다”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남아있었다.
희년이 시작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야 했지만,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비상계엄부터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계속해서 들려오는 인명피해 사건·사고까지. 각종 혼란 속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북한군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 소식은 더욱 그러했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나뒹구는 시신이 머리에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교회는 계엄 정국에 관한 성명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한 애도문을 냈지만, 침묵의 교회가 있는 북녘 땅 수천 명의 파병 북한군인의 사상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평양교구와 함흥교구가 있고 북방선교를 위한 사제를 양성하는 것을 생각하면 교회의 침묵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시금 ‘교회다움’을 그려본다. “1970~1980년대 격동기를 헤쳐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 했을 뿐이다.”(고 김수환 추기경) 하느님이 부여하신 인간의 존엄 아래 국경도 사상도 손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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