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상상하지도 못했다. 21세기가 한참 지난 2024년 12월을 ‘계엄’이라는 사건으로 시작하게 될줄은. 그리고 기대와 환희가 아닌 ‘슬픔’이란 단어로 마무리하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는 이 분노와 슬픔의 감정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새해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이 틀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렇듯 2024년은 예측하기 어려운 한 해였다. 많은 사람이 슬픔과 고통, 크고 작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왔다. 내가 아버지를 황망하게 떠나보낸 것처럼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 아픈 하루를 보냈을 것이고, 누군가는 삶의 무게에 눌려 힘겨운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조차 버거운 싸움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2024년의 마지막 페이지를 함께 채우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어려운 순간에도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고통은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라고들 한다. 고통은 마음을 찢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놓이게 하지만, 그 안에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무가 추운 겨울을 지나 봄에 싹을 틔우는 것처럼 사람도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너무 커서 이런 말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은 보통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성공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삶의 본질은 그런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하루하루를 견딘 너의 용기는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각자 나름의 빛을 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힘든 순간들뿐만 아니라 감사할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았던 순간, 누군가의 위로 한 마디,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느꼈던 평온함 같은 것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이제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분노와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2025년을 맞아 두려움이나 기대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해를 시작하며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모든 것이 너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부일 뿐이다.
잠시 멈춰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그리고 얼마나 주님 말씀을 우리 삶에 실천하고 살았는지를 살펴보자. 마태오가 전하는 거룩한 복음 중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란 구절이 있다. 주위에서 가장 큰 슬픔에 잠겨있고, 분노로 자신을 해치며, 가난한 마음을 지니게 된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두운 새해는 오히려 작은 이들에게 우리가 어떠한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만약 당신 스스로가 슬픔과 분노, 우울과 회한에 잠겨있다면 스스로에게 힘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
2025년 시작점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위로를 전한다. 삶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너의 곁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서로를 위로하고 희망을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새해에도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너와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득하길.
'여론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장 돋보기] 교회다움 (0) | 2025.01.18 |
---|---|
[사도직 현장에서] 나의 크리스마스는 365일 (0) | 2025.01.18 |
[신앙단상] 성령의 불이 내 머리 위에 내린다면(김하윤 가타리나, 한국가톨릭젊은이성령쇄신연합 회장) (0) | 2025.01.18 |
[시사진단] 내란과 희년(박상훈 신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0) | 2025.01.18 |
[사제서품] 마산교구(2명)· 삼위일체수도원(1명), 1월 8일 (0) | 2025.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