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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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평화칼럼] 사도 전승의 순간

참 빛 사랑 2024. 9. 28. 12:15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 낙스빌교구의 주교님께서 은퇴하신 후, 후임 주교님이 바로 임명되지 않으면서 우리는 마치 목자 잃은 양 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새 주교님을 맞이하는 일이 교구로선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후임 주교님이 정해지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자들은 매 미사 후에 ‘새 주교님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며 하루빨리 후임 주교님이 임명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새 주교님 임명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마침내 주님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해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더불어 주교님 서품식에 직접 참석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큰 축복이었다.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는 것도 드물게 주어지는 기회인데, 주교님 서품식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기회였다.

새로 임명된 주교님은 인접한 내슈빌교구 출신이시고, 내슈빌본당 주임 신부님께서 늘 우리 공동체를 방문해주셨던 터라 이번 서품식은 낙스빌과 내슈빌 공동체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 되었다. 덕분에 낙스빌 공동체 신자들, 내슈빌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쁜 마음으로 서품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서품식장에 입장하자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 있었다. 그 안에는 주교님들,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수도자들이 자리해 성대한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성직자가 한자리에 모인 장면은 아마도 평생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품식이 시작되고, 수많은 신부님이 차례로 입장하셨다. 그중 우리 신부님은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가장 눈에 띄었고, 한인 공동체 신자들은 환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가톨릭 신앙 안에서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정체성도 함께 지켜가고 있음을 느끼며 한인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주교님들이 입장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수많은 주교님들이 새로운 형제를 맞이하기 위해 먼 곳으로부터 와주셨던 것이다. 바티칸에서 파견된 교황청 대사님도 이 자리에 함께 계셨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기도로 함께하고 계셨다.

서품식은 경건함과 감동으로 가득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주교님들이 차례로 새 주교님께 안수해주는 장면이었다. 2000년 넘게 이어져 온 가톨릭교회의 사도 전승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비롭게 느껴졌다. 주교님들께서 한 분씩 안수하시며 진심 어린 기도를 올리는 순간, 그리고 그 기도를 경건하게 받아들이시는 마크 백맨 주교님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후 주교님께서 단상에 서서 말씀을 전하셨다. “오늘은 한 사람에 관한 날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날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영어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많은데, 그 순간만큼은 주교님의 말씀이 또렷하게 들렸다. 성령의 도우심 덕분이었으리라. 주교님의 말씀은 매우 옳았다. 이날은 주교님의 서품식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날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날이며 그분의 권위와 가르침이 2000년을 이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 신앙생활을 예수님께서 친히 권한을 물려주신 목자들과 함께하고 있다니 든든한 마음이 들어 감사했다. 그리고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주교님들과 교회 안에 함께 계신다.

“함께 계신 주님, 새로 임명되신 주교님이 참 목자가 되길 도와주소서. 아멘!”